안그라픽스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리뷰

2015. 7. 7.

디자인 평론가 최범은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서문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과연 디자인 고전이란 있는가. 그것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역사도 사람의 손으로 쓰여집니다. 역사에는 역사가의 관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며 동시대가 동의한다면 역사가 됩니다. 그리고 시대가 흐르며 역사도 바뀝니다. E. H 카가 말하지 않았나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이 책에 소개된 10권의 디자인 고전들은, 제가 디자인을 전공했다지만 한두권 정도 빼고 처음 보는 책이었습니다. 그만큼 디자인을 모릅니다. 특히 아돌프 로스의 「장식과 범죄」 니콜라우스 페브스너의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문화」는 '학생 때 꼭 읽어야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자인 역사를 만든 이 책들을 읽고 있으면 디자인의 본질과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한국 디자인에 텍스트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텍스트가 없는 게 아니라 '디자인'이 없었던 건 아닌지 의문입니다. 아직도 한국의 디자인은 없는 듯합니다. 애플에 조나단 아이브가 있고 그가 브라운의 디터 람스에게 영향을 받았다면, 삼성 갤럭시에는 누가 있나요. 그리고 그 누구는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나요. 니콜라우스 페브스너의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들」를 읽어보면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꼭 지금 그때처럼 시대의 영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디자이너가 있어야 디자인이 있고 담론이 형성됩니다. 한국에는 텍스트의 대상인 디자이너도 잘 없는 듯합니다.


그럼 저자가 말한 한국 디자인의 텍스트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역시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 건축계는 언제부터인가 '없다'라는 담론을 꺼내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 왜 없는지, 왜 없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스스로 인정하고 나선 것입니다. 여기서 한국적 텍스트의 첫 레이어가 쌓인 것은 아닐까요. 지금 한국 건축계는 끊없는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가장 활발해 보입니다.


조민석 건축가는 성숙한 관찰자입니다.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시 「한반도 오감도」 말입니다. 근대 이념의 대립과 도시-건축을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프레임으로 풀어, 한국 건축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건축 전시였지만 어느면에선 건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념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이념만 있지 건축문화는 없는 상황을 꼬집은 것입니다. 이념 싸움의 구도는 2015년 현재에도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듯합니다.


야나기 무네요시를 보는 저자의 눈과 한국 건축문화를 바라보는 조민석의 눈은 묘하게 닮았습니다. 저자는 「더하는 글- 야나기 무네요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나기에 대한 이해가 찬반론과 애증론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야나기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서 찬반론과 애증론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네 밥그릇 챙기는 것 말입니다. 이는 최근 신경숙 사태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꽤 오래된 듯하지만 여전한 건축가협회, 건축사협회의 보이지 않는 대립구도도 여전한 듯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텍스트가 생기기는 커녕 정치만 난무할 것입니다.


'고전'은 만들어간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그에 앞서 좋은 디자이너에게서 좋은 작품이 탄생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도 1세대 디자인 선구자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나라가 성장하며 우왕자왕 담론 없이 디자인이 흘러왔습니다. 최근 근대문화를 한 발 뒤에서 관조하며 성장한 젊은 세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적 텍스트를 생산할 기미를 활발히 보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직까지 불모지인 곳에서 이념을 넘어 새 역사를 써 내려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