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미래 / 알랭 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의 토론

2016. 10. 27.

내가 인류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봤던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간혹 히어로 물 영화에서 주인공이 악당에 맞서 위험에 빠진 인류를 구하는 장면을 보고 짧은 희열을 느끼는 정도다.


내가 고민하는 건 인류가 아니라 나와 나를 둘러싼 가족, 친구 등 몇몇 사람들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와 주위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 인류에 대한 고민보다 결코 하찮거나, 내가 이기적이라는 죄책감이 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를 둘러싼 작은 사회는 인류와 가는 끈으로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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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자신을 돌보는 일은 인류를 걱정하고 돕는 일에 비해 결코 간단하거나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매일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규칙적인 운동과 숙면을 하고, 주위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자존감을 지키고, 질투심과 성욕을 줄이고, 속물근성을 경계하면서도 행복과 만족감을 추구해야 하는 등 자신을 온전히 돌보는 일은, 예측할 수 없고 취약한 인간의 본성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작년 출간된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한 질문을 인용하자면 이메일로 인해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지만, 우리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오히려 더 많은 일을 처리하게 되며 스트레스에 고통 받는 건 아닐까?


좀 전에 언급한 문제는 '인간성 상실'이라는 현대 사회에 만연한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이는 과학과 경제학으로 말끔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각종 수치를 내세워 "인류의 미래는 진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햄릿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해 보시죠!”라고 반박하는 알랭 드 보통의 관점을 나는 지지한다.



[사피엔스의 미래]는 ‘인류의 앞날에는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논제를 놓고 벌인 '멍크 디베이트' 토론을 엮은 책이다. ‘인류의 앞날에는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에 ‘그렇다’라는 입장을 보인 2명,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핑커 (Steven Pinker), 영국 상의원 매트 리들리(Matt Ridley)와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인 2명, 철학가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뉴요커 기자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흥미로운 토론을 벌였다.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열린 토론은 '인류의 범위'와 '진보의 정도'를 두고 상반된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200여 쪽의 책을 한 호흡으로 완독할만큼 토론은 매우 흥미로웠으나 토론의 깊이는 아쉬웠다. '인류의 앞날에는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는가'의 논제에 '아니다' 측의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은 인문학과 철학을 내세웠고, '그렇다' 측의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는 과학과 경제학을 내세웠다.


'아니다' 측은 주로 점점 사회가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화(진화가 아닌)함에 따라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그 파괴력도 점점 커진다는 논지였다. '그렇다'는 측은 주로 과학의 역사는 계속해서 축적해서 높아지지 퇴보하지 않으며 이 과정에서 사회가 점점 복잡성을 띄는 건 파괴력을 키우기보다 오히려 서로의 연결망을 통해 위험부담을 줄인다는 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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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전병근이 옮긴이의 말에 밝혔듯 "이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에는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미래를 쉽게 포기하지 않되 결코 과신하거나 오만하지도 않는 태도다." 이들은 인류 멸망론자이거나 극단적인 번영론자가 아니다. 그들은 앨리 와인이 논평에서 말콤 글래드웰을 지칭하듯 '세련된 현실주의자'이자 매트 리들리가 자칭하듯 '이성적 낙관주의자'이다. 그들은 마치 '인류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공통된 믿음 아래, 더 나은 미래를 현실을 긍정하며 이끌 것인가, 부정하며 이끌 것인가를 두고 다투는 것 같았다.


알랭 드 보통의 토론 참여 방법이 유난히 흥미로웠다. 알랭 드 보통은 상대 팀의 인문, 철학적 모순을 짚으며 그들 스스로 '인류는 나아진다.' 라고 믿던 것을, '나아진다는 희망을 믿는다.' 쪽으로 서서히 옮겨 놓았다. 토론은 방청객 투표를 통해 '그렇다' 측이 이긴 것으로 일단락났지만, 철옹성과 같던 인류 번영의 조건 없는 믿음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으로 인문학과 철학이 스밀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는 '아니다' 측이 이긴 것처럼 느껴진다. (역시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