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7.
그녀가 나를 안 사랑한다고 했다. 말의 힘은 강했다. 그 말을 듣자 단숨에 삶의 의지와 희망이 사라졌다. 단 하나의 희망이 있었다면, 그녀에게서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뿐이었다. 그럼 모든 게 제 자리로 돌아올 것 같았다.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나? 나에게 더 이상 설레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스스로를 가꾸지 못한 내 탓 인가? 그런 그녀는 얼마나 잘났길래? 어떤 생각을 떠올려 봐도 어두운 현실 속의 더 깊은 곳을 파고 드는 기분이었다.
임경선 작가의 장편소설 <나의 남자>는 그 어둡던 때에 발견한 책이다. 임경선 작가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을 읽고 알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향한 저자의 관심과 애착을 따라 책을 읽으며, 동시대 작가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분명하게 책을 사게 된 것은 제목 때문이었다. ‘나의 남자’라니. 그 남자는 도대체 어떤 매력을 가졌길래 누군가가 확신을 갖고 소유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책을 받아 들고 뒷 표지를 보니 처절한 문장이 가슴을 조였다. ‘참 좋은 사람. 당신을 더 빨리 알았더라면.’ 당시 상황에서 ‘참 좋은 사람’이 내가 아닌 누군가일 거라는 생각에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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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완독 했던 장편소설 <사라바> 이후에 이렇게 소설에 푹 빠지게 될 줄 몰랐다. 아유무(사라바 주인공)가 조언했던 대로 이야기에서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했던 걸까? 언제 소설을 읽지 않았냐는 듯 <나의 남자> 이야기에 금새 빠져들었다. 나를 안 사랑한다고 말한 그녀를 만나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절반쯤), 생활이 제 자리를 찾았을 때 소설을 다 읽었다.
결혼 후 아이를 둔 여자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빠져드는 이야기를 읽으며 사랑이란 눈부시게 아름다우면서도 굉장히 무서운 거라 생각했다. 저자도 ‘시큰거리는 감정의 결들을 매만지며 일상은 행복하기도 했고 쓰라리기도 했다.’라고 고백했다. 누군가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 했던가? 내 경험으로는 그 반대다. 여자는 남자 하기 나름이다. 특히 이 지옥 같은 여성혐오와 성차별이 뿌리내린 한국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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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그녀에게 섬세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나는 이기적이고도 당연하게 사랑했다. 주는 사랑에도, 받는 사랑에도 절실함이 필요하다. 결국 그녀에게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은 <나의 남자>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어쩔 수 없이 무언가로 끌려가는 것이겠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