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텀(DOCUMENTUM) 4 리뷰 / 건축을 보는 새로운 프레임

2015. 7. 28.

《디자인평론1》에 디자인 평론가 최범이 쓴 〈'세월호'와 '디자인 서울'〉이라는 글에 동의합니다. 세월호로 본 한국 사회가 그렇듯 디자인으로 본 한국 사회는 문명이라기 보다는 야만에 가깝습니다. 특히 최범은 참사에 가까운 '디자인 서울' 정책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디자인을 정치적 수단-선전구호로 여기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제외하고 건축만큼 '정치적'일 수 있는 분야가 있을까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전시 《아키토피아의 실험》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와 건축의 관계는 밀접하게 작동해왔습니다. 그리고 정치의 디자인이 그렇듯 정치의 건축은 스스로 발전하기보다 오히려 제 살을 깍아먹습니다. 건축 평론가 박정현의 말대로 판교신도시는 건축의 유토피아인 동시에 무덤입니다.


앞서 최범이 쓴 단행본인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2015》 리뷰에서 밝혔듯, 저는 그동안 한국에 건축과 디자인이 없었고, 최근들어 젊은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소규모 스튜디오가 '없다' 담론을 발판으로 새로운 레이어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헌 교수는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 2013》에서 한국 건축이 빠르게 산업화되는 과정 속에서 건축보다 건설이 우위에 있음을 지적하고, 한국 건축의 행정적, 학문적, 사회적 위상을 분석해 건축문화가 제도화되지 않았음을 논리적으로 밝혔습니다. 원로 건축가 지순, 원정수는 《집: 한국 주택의 어제와 오늘, 2014》 발간에 맞춰 월간인테리어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유럽이 르네상스 시대에 거래문화가 발전해 건축가가 활발한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된 반면, 한국은 조선왕조까지 인심과 정을 주고 받는 농경사회였고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한국에 건축문화가 정착될 수 없었음을, 더 원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건축이 없었다는 담론이 최근에 생겨났다면, 그동안 건축 미디어는 무얼 했을까요. 건축문화의 저변을 확대하기 보다는 건축가의 위상을 높이거나, 정치적 움직임에 바빴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이제 4호를 발간한 다큐멘텀의 행보는 최근 새롭게 편성된 판 위에서 '새로운 레이어 쌓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건축가와 작품 자체를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통해 건축주, 건축가, 사회, 문화 전반을 다루는 것입니다. 이는 매거진 B가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한 호에 하나의 브랜드와 관련 문화를 넓게 조명하는 것과 닮았는데, 이러한 태도는 좀 더 객관적으로 디자인과 건축을 바라보고 진단, 성숙하려는 한국 특유의 시대적 반응일지 모릅니다. 복잡한 정치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 것이죠.


다큐멘텀(DOCUMENTUM) 2 리뷰 / 황두진, 현대캐피탈,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다큐멘텀(DOCUMENTUM) 3 리뷰 / 와이즈건축, 네이버 SPX팀, 어둠속의대화


이번 다큐멘텀 4호는 한국에 건축가가 없다고 말하기 민망할 만큼 건축가다운 건축가인 가온건축의 임형남·노은주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담았습니다. 그동안 하나의 작품을 두고 관련된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짚었다면, 이번 호에는 건축가를 중심으로 그들이 만난 클라이언트, 만나서 나눈 대화, 건축을 대하는 태도를 담았습니다. 건축가가 만난 클라이언트 가족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건축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독자라면, 다큐멘텀 4호를 통해 집과 건축, 건축가에 대해 여러모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다큐멘텀은 이로서 건축 문화 전반을 프레이밍하는데 한단계 더 다가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