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아키토피아의 실험> 프리뷰

2015. 7. 9.

아키토피아의 실험 전시는 '실험'이라는 제목이 멋쩍을 만큼 유토피아 건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시대별로 유토피아적 욕망이 실현된 대표적인 마스터플랜인 세운상가, 파주&헤이리마을, 판교신도시를 사진 영상 모형 글로 조명합니다. 국가 주도의 도시 정책은 그저 사람들에게 욕망을 팔았을 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다는 것을 전시된 작품이 말하고 있습니다.



“… 김수근은 그 자리에서 세운상가의 설계를 의뢰받았으며 그해 11월에는 서울시 도시계획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57년에는 영천 남대문지구 재개발 계획, 이어서 3.1 고가도로의 구상과 설계, 1958년에는 김수근 일생일대의 걸작인 여의도 종합개발 계획을 수립했다.” ISSUE #1 유토피안의 꿈 중


“… 관이 주도한 밑그림(파주&헤이리)에 작가 의식이 강한 일련의 건축가 그룹이 새로운 입체를 더하면서 갈등이 야기되었다. 새로운 도시를 만들겠다는 건축가 그룹의 야심찬 포부에도 불구하고, 이미 법적 효력을 갖게 된 기존 마스터플랜의 도로나 필지구획을 변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ISSUE #2 건축도시로의 여정 중


“… 판교는 건축의 유토피아이자 동시에 무덤이다. 중산층과 건축가의 취향과 욕망은 판교를 건축의 전시장으로 만들었지만, 어떤 건축도 자신이 처한 대지를 벗어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ISSUE #3 욕망의 주거풍경 중


옵티컬레이스의 그래픽 작업은 이 세 텍스트의 흐름을 잘 설명합니다. 80년대 전후로 넓고 긴 붉은 띠를 형성하고 있는 건축가 김수근과 달리 그 다음 세대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는 현 서울시 총괄건축가 승효상은 얇고 긴 초록색 띠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건축가 조민석 -파란 원- 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건축가가 작은 점을 산발적으로 찍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세운상가 ~ 파주·헤이리 ~ 판교로 이어지는 흐름과 같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정다영은 건축가의 힘은 점차 약해지고 상대적으로 건축주의 힘은 강해지는 흐름이 읽힌다고 다큐멘텀과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습니다.


옵티컬레이스 OR, 건축가 대세론 / ISSUE #2와 ISSUE #3 통로(출구)의, 어느 ISSUE 에도 속하지 않은 작품, 트위터 @unlooow


ISSUE #1 유토피안의 꿈 전경,국립현대미술관 보도자료 ⓒRoh Space


ISSUE #2 건축도시로의 여정,국립현대미술관 보도자료 ⓒRoh Space


ISSUE #3 욕망의 주거풍경 전경,국립현대미술관 보도자료ⓒRoh Space


건축 평론가 박정현은 한국일보에 쓴 글에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직접 건설해보려는 시도 대부분은 근대 이후의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수 많았던 매니페스토는 온데 간데 없고 이제 건축의 종말을 말하는 렘 쿨하스의 매니페스토 아닌 매니페스토만 남았습니다. 암울한 건축의 미래를 말하면서도 자본에 이끌려 열혈이 작품을 내뱉는 렘 쿨하스의 애매한 포지셔닝 자체가 이 시대의 건축을, 판교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어쩌면,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건축은 사회에 새로운 이념이 생성되는 초기에 랜드마크로서 작동될 뿐 실제 유토피아적 상황이 연출되는데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지도 모릅니다. 종종 도시 속에서 눈부시게 멋진 건축 공간을 만나는 '운'에 그저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