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27.
도쿄 오모테산도를 걸으면 현대 도시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명품 숍이 즐비한 거리는 깨끗하고 한껏 세련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오모테산도를 뒤로하고 돌아가는 길에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엄습합니다. 거대 자본이 형성한 거리는 끊임없이 현대인의 욕망을 갈취하고 소비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리듬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현대인은 끊임없이 오모테산도로 향해 소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 오모테산도 아오야마 일대는 명품 숍 건축물의 각축전으로 유명합니다. 2002년 준 아오키의 루이비통 매장, 2003년 헤르조크드뫼롱(Herzog & de Meuron)의 프라다 매장, 2004년 이토 도요의 토드 매장, 2005년 안도 타다오의 오모테산도 힐즈 복합매장, 2007년 MVRDV의 GYRE 쇼핑센터, 2012년 OMA의 코치매장, 2014년 사나아(SANAA)의 디올매장.. 더 있을까요? 아무튼 하나하나 열거하기에도 많은 유명 건축가의 이질적인 건축물이 서로 경쟁하며 뒤섞여 있습니다.
얼마전 헤르조크드뫼롱이 설계한 프라다의 세컨드 브랜드 미우미우 매장이 패션 브랜드 숍이 가득한 이 곳에 모습을 드러섰습니다. 물론 자신들이 건축한 10여년 전 프라다 매장을 포함한 곳 말이죠. 10년동안 오모테산도라는 거리의 풍경도 변했고 건축가도 변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두 건축물과 브랜드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재밌을 듯합니다.
image│www.openbuilding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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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브랜드와 건축가의 협업
브랜드는 플래그쉽 스토어를 지을 때 자기 브랜드의 정체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소위말해 케미가 잘 맞는 건축가를 선별합니다. 프라다는 낙하산이나 군용 텐트에서 사용되던 나일론을 이용해 가방을 만들며 입지를 다졌을 정도로 재료에 있어서 혁신적인 패션 브랜드라 할 수 있습니다.
헤르조크드뫼롱은 어떤가요. 2001년 프리츠거상을 수상할 당시 심사위원 대표인 카터 브라운(J. Carter Brown)은 "이들처럼 건축 외피를 위대한 상상력과 기교로 연주한 건축가는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 (One is hard put to think of any architects in history that have addressed the integument of architecture with greater imagination and virtuosity.)"라고 했고 2013년 타계한 건축 비평가 아다 루이즈 헉스타블(Ada Louise Huxtable)은 "그들은 재료와 표피를 새로운 접근법과 기술을 통해 전통적인 모더니즘을 간결한 요소로 구체화한다.(They refine the traditions of modernism to elemental simplicity, while transforming materials and surfaces through the exploration of new treatments and techniques.)"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패션과 건축의 두 브랜드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립니다.
미우미우 아오야마점 프리뷰
2003년 완공된 프라다 매장은 무엇보다 표피가 인상적입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볼록한 유리마감이 샤넬 가방에 자주 쓰이는 캐비어 가죽을 닮았습니다. 패션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건축 마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로 수많은 브랜드가 신규 매장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죠.
헤르조크드뫼롱이 신축한 미우미우 매장은 작고 겸손하게 느껴져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오모테산도의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그들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말하길 “백화점 보다는 집처럼, 개방적이기 보다는 숨겨진, 낭비스럽게 느껴지기 보다는 겸손하게, 투명하기 보다는 흐릿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큰 캐노피는 동북아 지역의 무거운 지붕을 닮은 듯해 동양적인 분위기를 물씬 품고 있으며 날카롭게 잘라 낸듯한 파사드는 일본의 섬세하고 강직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무언가 감추고 있는 듯한 외관으로 무심하게 오모테산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발걸음을 멈추게하고 조심스럽게 매장으로 들어가 보게 합니다. 휘황찬란한 불빛을 내세워 욕망을 갈취하기보다 내면으로 아름다움을 숨겨 사람들과 공유하는 분위기의 이곳은 오모테산도를 더 인간적으로 다가가게 하는 우아함을 간직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