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망 미니멀리즘 탐구

2023. 7. 21.

미니멀리즘이란 키워드를 말할 때면 민망함과 무심함을 느낀다. 이러한 마음은 최근 몇 년 간 미니멀리즘이 상품화된 현상과 그에 대한 나의 비판 의식에 있다.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제품으로 채운 카페의 광고성 후기, USM 선반에 루이스폴센 조명이 놓인 새 아파트 집꾸미기 영상의 조회수, 바우하우스 100주년 전시에 인스타그램 사진을 찍기 위해 늘어선 인파와 같이 미니멀리즘이 상품화된 현상 속 부재한 미니멀리즘 정신에 대한 비판 의식이다. 그렇다면 대관절 미니멀리즘 정신은 무엇이며, 그것이 왜 이러한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기준이 될까? 나는 미니멀리즘이 상품화되는 현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피곤한 일로 치부하며 이 중요한 질문을 피해 왔다. 이 질문이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는 나 스스로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기 때문이고, 그 질문을 피해온 것은 미니멀리즘이 상품화되는 것에 동조했다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이제는 미니멀리즘이 상품화되는 현상에 대한 비판 의식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남과 다른 고상한 미니멀리스트라고 여기는 자존심을 내려 놓으며, 미니멀리즘의 본질을 들여다 볼 때가 되었다. 이렇게 결심한 건 카일 차이카가 쓴 <단순한 열망 : 미니멀리즘 탐구, The Longing For Less Living With Minimalism> 책을 읽으면서부터다. 카일 차이카는 내가 그랬듯이 미니멀리즘의 상품화 현상에 문제를 제기한다. 한편, 내가 문제만 삼고 피해왔던 미니멀리즘의 본질을 탐구했고 이를 책으로 엮었다.

카일 차이카는 미니멀리즘의 특징을 줄임, 비움, 침묵, 그늘의 4가지로 정리했다. 줄임은 “소유에서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단순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비움은 불필요한 것을 덜어 냄으로써 공간을 “지배하는 힘”, 즉 환경의 통제권을 갖는 것이다. 침묵은 “혼란한 세계에 맞서 감각을 보호하려는 욕망”이다. 그늘은 “불명확한 다의성의 수용, 삶 혹은 운명의 임의성”이다.

저자가 탐구한 미니멀리즘의 4가지 특징을 읽으며 결국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마음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추구하려는 의지와 맞닿았다고 느꼈다. 자유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빠짐없이 알고, 그 선택지를 알지 못하게 하거나 선택권을 박탈하는 환경으로부터 선택권을 보호하고, 스스로 선택하여 책임을 지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니 미니멀리즘에 대한 열망은 자유에 대한 열망이다. 앞으로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데 기준을 세우기 위해 저자가 정리한 4가지 특징을 물리적 미니멀리즘과 정신적 미니멀리즘으로 나누어 블로그에 내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정리한다.

카일 차이카 단순한 열망 : 미니멀리즘 탐구 표지

 

물리적 미니멀리즘

1. 줄임. 나는 무언가를 소유했을 때 소유한 대상을 집착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소유를 하게 되면 우리의 몸은 소유품에 귀속된다. 물건이 나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물건에 귀속된다니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나, 문자 그대로다. 집을 소유하면 그곳을 거점으로 우리의 몸은 활동반경이 통제된다. 거실에 소파를 두면 우리의 몸은 그곳에 앉히게 되고, 그 자리에 다른 물건을 둘 수 없게 된다. 신발장에 신발이 가득 차면 더 이상 새로운 신발을 사 넣을 수 없다. 신발장에 있는 것 중에서만 오늘 신고 나갈 신발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물건을 줄인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최소한 1/3 정도는 여유를 두려 한다. 신발장에 신발이 2/3 이상 채워지면 자주 신지 않는 신발 순서로 버린다. 거실에 더 많은 선반이나 보조 테이블을 둘 수 있지만 공간의 2/3 이상 채우지 않는다. 집을 살 수 있는 재산의 한도에서 2/3 정도의 집을 산다. (물론 빚을 포함해서) 그 속에서 나는 꽉 찼을 때보다 비교적 많은 여유와 자유를 느낄 수 있고 스스로 온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함을 느낀다.

2. 비움. 장식은 하지 않되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마음을 담아 장식한다. 장식은 스타일이고 스타일은 시간이 지나면 유행이 바뀐다. 내가 초반에 미니멀리즘이 상품화된 현상에 무심함을 느낀다고 한 것은 이 맥락이다. 미니멀리즘은 스타일이 없으므로 소재 본연의 색 또는 흰색을 추구하고 장식이 없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의 특징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로 상품화되는 현상은 미니멀리즘이 특성에 반대된다. 스타일은 시간이 지나면 바뀌기 때문에 그 자체로 미래에 대체해야할 대상이 된다. 미니멀리즘 스타일을 따르는 것으로도 선택에 자유를 줄까? 나는 그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스타일은 나에게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주기보다는 그 힘을 제약한다. 해당 스타일에 조화를 맞춰 살아야 하기 때문에 스타일에 어긋나는 선택은 유행이 바뀌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다. 한편, 꼭 장식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나의 삶을 고양하는 장식이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를 추모하는 장난감이거나 웨딩사진 액자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들이 내 환경을 통제하는 범위까지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판단하여 장식한다.

 

정신적 미니멀리즘

3. 침묵.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이는 개인의 의지로 거스를 수 없는 자연현상의 법칙이다. 세상은 온통 잡 소음으로 가득하고 새로운 뉴스거리를 알리려 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 그 소음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정신을 맡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이 대표적이다. 숏폼이란 컨텐츠 형식은 어질러진 정보를 보기 좋게 정리해 둔 듯하지만 그곳에 빠져든 내 뇌는 무의미한 정보 속에 어질러지고 현기증을 일으킨다. 집 또한 그렇다. 정리를 하지 않으면 집은 곧 난장판이 된다. 설거지거리가 쌓이고 벗어 둔 옷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자유 의지를 발휘할 순 없다. 숏폼 콘텐츠를 켜는 행위와 옷을 늘어 놓는 행위는 자유 선택이 아니라 의식과 행동의 흐름대로 맡긴 카오스 상태이다. 의식적으로 숏폼을 끄고 옷을 정리한 무의 상태가 자유 선택할 수 있는 디폴트 환경이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끊은 지 반년이 지났고, 무의식적으로 유튜브에서 볼거리를 찾아 헤매는 일을 줄이고 흥미 있는 책을 선택해 읽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데 노력하고 있다.

4. 그늘. 책에 기술된 해당 ‘그늘’ 부분은 내가 명확히 깨닫지 못했던 미니멀리즘의 특징이자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태도이다. 저자가 해당 장을 설명한 “불명확한 다의성의 수용, 삶 혹은 운명의 임의성”은 정신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다. 편견 없이 나에게 주어진 사건 또는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내가 매료된 ‘와비사비’ 미의식과도 공통점이 많다. 완전히 새것들로 치장된 새 집에 들어갔을 때 드는 불편함은 오랜 시간에 걸쳐 아끼는 가구를 모아 온 어떤 이의 집에 들어갔을 때 드는 편안함과 반대에 있다. 이는 새 것과 헌 것이라는 물리적인 차이가 아니라 정신의 차이란 걸 분명히 하고 싶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낡아진다. 인간은 나이가 듦에 따라 인신대사량이 줄어 살이 찌고 병약해진다. 몇 달간의 엄격한 식단관리와 트레이닝 그리고 약물의 도움을 받아 찍은 바디프로필을 보는 불편함은 앞서 말한 새것으로 치장된 집의 불편함과 같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나잇살이 든 어느 중년의 몸이 편안하고 보기 좋다. 건축물도 데코벽돌로 둘러친 건물보다 차라리 철골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 건물이나 노출콘크리트 건물이 시간이 지나도 자연스럽고 좋게 느껴진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우주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니 모든 것은 끝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다. 나라는 개인이 끝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 선택권을 가지고 자유를 느끼는 일이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그래서 나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책 내용이 다소 저자의 감상적인 면에 치우쳐 있고 현학적이며 주장하는 바가 명확치 않았다고 느꼈기에, 이 글에 적은 내용이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했을지도 모르겠다. 해당 글을 빌려 미니멀리즘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