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3.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책을 읽으며 매주 일요일 감상을 나누는 ‘독서토론’을 하고있다. 독서토론을 하는 이유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동안 서로의 생각을 더 이해하고 공감대를 이루기 위함이다. 책의 주제는 매달 바뀌는데 격 달로 서로 관심사가 가는 책을 선정한다. 이번에 6번째로 함께 읽은 책은 아내가 선택한 책으로 전홍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이다.
아내가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내가 평소 매우 예민하기 때문이다. 평소 큰 언쟁은 오간 적은 없지만 내의 예민함으로 인해 아내가 종종 힘들어 했고, 그에 따라 서로에게 서운한 일이 있었다. 이 책을 함께 읽으며 나의 예민함을 이해하고 앞으로 부부 관계를 원만히 만들어 가자는 취지로 아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책에 수록된 ‘예민함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아내가 나보다 더 예민한 사람이었다. 총 28문항 중 13개 이상인 경우 매우 예민한 사람인데, 나는 총 13개였고 아내는 22개가 넘었다.
예민함 테스트를 통해 예민함은 나처럼 겉으로 잘 드러나기도 하지만, 아내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예민함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 스스로 예민함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우울함이나 불안함을 느끼고 자존감이 낮아져 일상 생활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예민함이 잘 드러나는 사람보다 위험하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드러나지 않아서 몰랐던 아내의 예민함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었고,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시간이 무수히 많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 글은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것과 다짐을 기록한 것이다.
1. 서로의 예민함을 인지하기
2. 예민함의 원인 파악하기
3. 예민함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기
1. 서로의 예민함을 인지하기
예민함이란 외부의 자극에 민감한 정도이다. 즉, 매우 예민하다는 것은 감각수용 기관인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일반적인 기준보다 민감하다는 것이고,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뇌가 쉽게 과부하에 걸리게 된다. 예민한 사람들이 쉽게 피곤해하고, 짜증을 내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나의 경우 시각, 청각적으로 예민함이 크게 나타나고 아내의 경우엔 타인의 눈을 보며 대화하는 것에 예민함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예민함은 강박적 성격으로 표출될 수 있는데, 나의 경우엔 사소한 세부사항의 규칙 등에 얽매여 큰 흐름을 잃고, 일을 완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타인이 자신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을 경우 타인에게 일을 맡기거나 같이 일하는 것을 꺼린다. 한편, 아내의 경우엔 위생에 강박을 보인다. 몸을 지나치게 오래 씻거나 눈에 보이는 것들을 구석구석 청소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나의 예민함은 스스로의 규칙에 타인을 구속하는 방식으로 표출되고, 아내는 청소나 정리를 통해 내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나의 예민함은 겉으로 잘 드러나고, 아내의 예민함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라 생각했다.
2. 예민함의 원인 파악하기
그렇다면 나와 아내의 예민함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개인의 예민함은 타고난 기질과 외부 환경으로부터 형성된다고 한다. 타고난 기질은 태어나면서부터 관찰되는 자극에 대한 반응성, 기질적으로 예민하게 태어나는 것으로 유전적 영향이 강하다. 한편, 외부 환경으로부터 형성된 예민함은 어린 시절의 양육 환경과 트라우마에 영향을 받는다. 트라우마란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 심각한 질병 혹은 자신이나 타인의 신체적 물리적 통합에 위협이 되는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후 겪는 심리적 외상을 뜻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엔 아버지와 할머니의 급하고 꼼꼼한 성격과 부지런한 행동을 보았을 때 나는 예민함을 타고났지 싶다. 책에 수록된 정신운동속도를 측정해 보았을 때 평균보다 매우 높은 수치를 보이기도 했다. 아내의 경우엔 예민함이 어릴적 양육환경과 트라우마로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군인 아버지를 둔 장녀로서 잦은 이사로 어린 시절 친구를 사귀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고 아버님의 파병기간 동안은 어머님을 도와 두 명의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어린 나이에 다소 벅찬 책임감을 짊어졌어야만 했다. 그로 인해 대인관계에 대한 어려움과 청결에 대한 강박이 생겼으리라 생각했다.
3. 예민함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기
책은 예민한 사람을 고성능 컴퓨터에 비유하며, "예민함을 잘 다루고 조절할 수 있으면 오히려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조언한다. 내가 책을 통해 이해한 바로 예민함을 잘 다루는 방법으로는 1. 좋은 기억을 쌓아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2. 자신만의 안전기지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고, 3. 건강한 대인관계를 통해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책에서 제안한 예민함을 다루는 방법을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며 서로의 예민함을 잘 다루고 조절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과거 트라우마와 관련된 일을 좋은 기억을 통해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저자는 “좋은 기억은 집안이 아닌 외부에서 쌓을 수 있으며, 좋은 음식, 아름다운 풍경, 재미있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평일 하루, 수요일에는 함께 서울의 도심의 맛집과 번화가를 여행하고, 주말에는 한적한 근교로 떠나 자연을 즐기고, 1년에 한두번 해외여행을 떠나는 등 주기적으로 좋은 추억 만들기를 해 나가기로 했다. 안전기지는 자신을 지지하는 배우자 또는 연인 등 사람이 될 수 있고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성취감 있는 일이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특정 환경일 수도 있다. 자신이 마음을 편안하게 느끼는 대상과 환경을 특정하고 많은 안전기지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예민함을 극복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안전기지가 되어주고 서로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물리적 환경을 가꾸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가족 외에도 건강한 대인관계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한다. 특히 아내의 경우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는데, 남편으로써 내가 이룬 건강한 대인관계를 통하거나, 새롭게 하는 취미생활인 영어공부와 피아노수업 과정 등을 통해 건강하고 편안한 대인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아내 스스로 노력하고, 남편인 나는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두에 밝혔듯 아내의 예민함에 대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와 아내 모두 인지하지 못했다. 낯선 사람과 대인관계를 가진 이후에 쉽게 피곤해지고 지쳤다는 것, 가까운 사람과 다투는 일이 생기면 상대방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우울해지고 그것을 청결에 대한 강박으로 드러냈던 것은 예민함 때문이었다. 자신의 예민함에 대해 잘 알고 그것을 다룰 줄 알게 되면 생활이 조금 더 편안해지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단초가 된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짐으로써 자존감도 높아진다.
신혼 생활은 서로 다른 삶을 30년 이상 살아온 두 사람이 앞으로 30년 이상의 삶을 약속하고 서로와 조화를 이루는 데 단초가 되는 시간이다. 당연히 생활은 삐걱대며 맞지 않는 부분이 발생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으로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매달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나와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조화로운 삶을 꾸려 나가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스스로 예민하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쉽게 피곤하고 지친다면 예민함이 높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나와 아내가 도움을 받은 것처럼, 자신을 돌아보고 더 사랑할 수 있는 독서가 되길 바란다.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