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6.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적는다. 세어 보니 블로그에 마지막으로 글을 적은지 50일이 지났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블로그에 글을 적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돌아보니, 지난 50일이 실제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그 정도로 50일 동안 일이 많았다. 내 부족함 탓이라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일하는 시간에 쫓겨 블로그 글을 적지 못했다.
블로그에 글을 적지 못했던 것은 시간이 부족했던 탓만은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 글로 남길만한 감상이 없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스로 감상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내가 느낀 이 감상이 기록할 만큼 가치가 있는 감상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으로부터 바쁘게 도망쳤던 기억이 몇 번이나 있다.
과거에 독후감을 쓸 때는 감상이 떠오르는 대로 글을 적었다. 돌이켜 보면 작가가 아닌 독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현재 내가 시나리오를 잘 쓰고 싶은 ‘작가’의 입장이 되고 보니, 책을 읽을 때마다 글쓴이의 탁월함에 자주 놀란다. 그리고 감상을 충분히 즐기기도 전에, 그 놀라운 감정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바쁘다. 더는 순수하게 글을 감상하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한 달여 전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책을 읽다가 눈물이 흐른 것은 처음이다. 눈물이라는 감정의 증거를 확인한 첫 경험의 탓인지,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집요하게 들었다. ‘무엇이 나를 눈물 흘리게 했을까?’ 책을 읽은 지 한 달이 지난 며칠 전 작가의 에필로그를 읽고 나서야 작가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독후감은 그 가늠을 기록한 것이다.
작가는 1970년 11월에 태어나 광주 시내의 중흥동에서 8살까지 살았다. 그 뒤 2년간 도심 외곽의 삼각동에 살았다. 1980년, 작가가 10살이 되던 해에는 서울 수유리로 이사를 왔다. 5·18민주화운동 이야기는 평생을 광주에서 보낸 집안 어른들의 입에 자연스레 오르내렸다. 어느 날엔 건장한 남자 2명이 누군가를 찾기 위해 새벽에 수유리의 집을 급습하기도 했다. 또한, 사진첩에서 본 충격적인 사건의 실상에 아연하기도 했다. ‘그 일’을 아스라이 비껴간 어린 소녀는 불혹의 작가가 되어 다시 ‘그 일’을 마주한다.
그녀가 생생히 추억하는 광주 중흥동 그 집에 이사 온 가족에는, 작가 또래의 어린 소년이 있었다. 아버지가 교사로 일하던 학교의 학생이었던 그 소년. 작문을 하라고 하면 곧 잘 써 냈다는 아버지의 기억 속 그 소년. 그리고 1980년의 ‘그 일’이 있던 날 희생된 그 소년, 동호. 작가는 몸의 기억을 좇아 중흥동 옛 한옥 집을 찾아 나선다. 집이 있던 자리에는 가건물이 세워졌다. 집에 살던 동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동호의 형이 오래된 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지었고, 그가 근처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주변 상인에게 듣는다.
그녀는 동호의 형을 찾아가 동호의 이야기를 쓸 허락을 구한다. 동호의 형은 당연히 허락할 일이라며, 돌아가신 어머니였다면 놔주지도 않고 끝없이 동호 얘기를 했을 거라고, 어머니가 그 일이 있은 뒤 돌아가시기까지 삼십 년 동안 그렇게 사셨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건이 붙는다. 잘 써야 한다는 것, 제대로 써야 한다는 것, 아무도 동생을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작가는 그 말을 얼마나 무겁고 무섭게 느꼈을까.
작가는 아무도 동호를 모독할 수 없도록 글을 쓴다는 조건을 지키기 위해, 동호에게 글을 쓰는 형식을 취하며 글을 시작했다. 오직 동호가 아니면 읽지 않아도 될, 하지만 스스로 동호가 되어 ‘그 일’을 직시하고 싶은, 역사의식이 깨어 있는 독자라면 기꺼이 읽을, 글을 썼다. 그리고 독자는 자연스레 그 일이 일어난 당시 그곳으로 이동해 동호가 된다.
당신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5·18민주화운동이 있은 지 10년이 지나, 경상도에서 태어난 나에게 그 일은 역사책에서만 보아 왔던, 사실 그리 피부에 와닿지 않던 일이다. 그 일이 있은 지 4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지금 모든 것이 또렷하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깊은지는 여전히 가늠할 순 없지만, 그것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안다.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안다. 내가 살아가며 무엇에 맞서고, 무엇을 지켜야 할지 안다.
그것은 소년이 내게 왔기 때문이고, 그 소년과 함께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