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명인

2019. 4. 6.

1938년 6월 26일부터 12월 4일까지. 무려 반년 간 열린 혼인보 슈사이 명인과 가타니 미노루 7단의 바둑 대국. 당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대국의 관전기를 썼고, 10여 년이 지나 이를 소설로 내놓았다. 명인에 대한 속 깊은 감상을 되뇌는 문체가 개인적이어서, 이야기가 비밀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혼인보 슈사이는 50여 년간 대국에서 패하지 않은 시대의 명인이다. 명인은 은퇴 대국에서 30대의 가타니 미노루 7단에게 패한다. 일본 바둑계가 ‘명인’을 예우하고 편의를 봐주었던 과거에서, 정정당당히 실력을 겨루는 문화로 바뀌는 시기와 맞물려, 당시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대국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명인> 표지 디자인: 매뉴얼


소설 속 주인공 우라가미가 바라본 혼인보 슈샤이 명인의 캐릭터는 대국자인 오타케 7단과 대조를 이루며 더욱 부각된다. 예순을 훌쩍 넘긴 명인과 서른의 신예 기사. 주어진 시간을 꽉 채워 수를 두거나 농담을 던지는 등 다소 전략적으로 대국에 임하는 오타케 7단. 그에 반해 말수가 적고 순수하게 승부에 몰입하는 명인의 모습이 기품 있으면서도 애잔하다.

우라가미는 명인이 대국에 임하는 모습을 두고 “승부 귀신에게 잡아먹히고 있는 듯 섬뜩했다”거나, “명인은 아득한 저 멀리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었다”고 말하면서도 대국 자체에 깊이 열중하고 판세를 유연하게 이끌어가는 명인의 원숙한 경지에 경의를 품는다.

오늘날, 세대가 여러 번 바뀌어 인공지능이 바둑 세계를 석권하는 시대. 모든 게 새롭게 재해석되는 시대. 이런 시대에 사는 내가 바라본 명인의 태도는, 우라가미가 그렇게 느꼈듯이 승패를 떠나 아름답다. 한 수 한 수에 놓인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다음 한 수를 내딛으며 구축하는 지적 세계의 아름다움. 승패도, 시대도 뛰어넘는다.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가와바타 야스나리 역시, 나와 같은 감상에서 명인의 죽음이 애틋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대의 변화가 반대 방향으로 급진적이었던 당시에서라면, 오히려 다시 그 낭만적인 시절로 회귀하려는 현시대에서 바라보는 애틋함보다 더욱 허무하진 않았을까.

소설 초반, 자신이 찍은 죽은 명인의 사진 속 디테일 하나하나를 감상하는 우라가미의 모습이 소설을 다 읽은 다음에서야 마음 깊이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