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베 세이코 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2019. 3. 12.

아무 일 없이 집에서 뒹굴며 쉬었던 몇 주 전 일요일. 한 주를 그냥 보내기 아쉬워 영화 한 편을 볼까 해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를 다시 봤다. 10년 전 갓 성인이 되었던 해에 본 영화(개봉은 무려 15년 전)인데 마음에서부터 문득 욱하고 보고 싶은 감정이 샘솟는다.


그동안 같은 영화를 몇 번이나 보았으나, 왜 마지막 장면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조제의 뒷모습인 줄 알았을까. 그 뒤로 집에서 밥을 짓는 조제의 뒷모습 한 컷이 더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알게 되었는데, 영화감독 이누도 잇신은 마지막 컷을 촬영하면서 다시 조제를 볼 수 없는 거란 생각에 그만 울어버렸다고 고백했다. 그 모습은 마치, 조제와 헤어지고 옛 연인에게 돌아간 츠네오의 마지막 눈물 연기와 같지 않았을까.


다나베 세이코 소설집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영화의 원작 소설,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읽었다. 표제작을 필두로 총 9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긴 단편 소설집이다.


단편 모두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로맨스인데 하나같이 평범치 않다. 동생의 약혼자를 지나치게 의식하여 부끄러워하거나, 이복 언니의 조카와 사랑을 나누거나, 임신한 몸으로 떠나는 남편을 편히 보낸다. 이러한 단편 중에서 조제만이 건강한 정신적 사랑을 나누며 유독 빛난다. 조제가 평범하지 않은 건 하반신뿐이다.


우리는 죽은 거야. 죽은 존재가 된 거야.


나는 어릴 적에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고비도 한두 번 있다. 그런 경험 탓인지 마음이 힘든 일이 있으면 ‘이번 인생은 덤으로 얻은 것’이라 생각하며 담담히 버텼다. 그러고 나면 알 수 없는 힘이 샘 솟던 어린 내가 조제를 보고 떠올랐다.


조제는 츠네오가 언제 자신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느낀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츠네오가 비로소 죽은 존재가 됐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조제는 츠네오가 떠난 뒤의 혹시 모를 인생을 버티기 위해서 자신과 츠네오가 죽었다고 여긴 것일까. 그 뒤의 인생은 덤이라 여길 수 있도록.


인생에 달관한 여자들의 로맨스를 읽는 마음이 왠지 자유롭다. 오늘도 감사히 덤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