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소설 좀도둑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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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곧 평생을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고 여겼다. 유치원에서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아주 기본적인 도덕과 사회 규범을 가르치는데, 막상 성인이 되어 보니 그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당황했다.


잘못했으면 사과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도덕들’과, 파란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과 같은 ‘규범들’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나이가 더 들어, 다시 그 문제를 생각해보니 ‘도덕’의 가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사회적 규범’은 실상 피부에 와닿지 않을 때가 많아 다시 당황했다.


그래서 요즘에 드는 생각은 내가 배운 ‘도덕’과 ‘규범’을 스스로 재해석하여 삶에서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개인의 가치관이나 소신이 아닐까(그래서 뉴스 속 범죄자를 마냥 욕하기보단 그들의 가치관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소설 〈좀도둑 가족〉 표지


여기 학대당하는 아이, 주리를 구조해 남몰래 키우는 연인, 노부요와 오사무가 있다. 뉴스에 크게 보도될 만큼 주리의 실종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때에도 그들은 주리의 이름을 바꾸고 외모를 달리하며 더 애착을 갖고 키운다. 주리 역시 생부모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납치한 이들과의 생활이 행복하다.


번듯한 직업이 없는 이 연인은, 독거노인의 집에 들어가 살며 그의 연금과 이곳저곳에서 훔친 생필품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주리보다 먼저 납치한 아이와, 노인이 거둔 가출한 큰 아이까지, 모두 여섯이 함께 한집에 살고 있다. 피 한방울 안 섞인 이들에게 자신의 집과 연금을 내놓는 노인은, 이들과 보내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이 행복하다.


어느 날 연인이 경제적으로 기대던 노인이 죽게 되고, 자신들이 주리를 납치한 일이 세상에 들통난다. 둘은 법의 심판대에 오르지만 쉽사리 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을 본 뒤 든 첫 감상은, 너무나 많은 캐릭터와 이야기가 짧은 시간 안에 꽉 들어차서 소화하기 벅차다는 것. 그리고 사실상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이미 앞선 가족 영화들에서 다 하지 않았나 하는 것. 실제로 감독은 〈태풍이 지나가고〉를 찍은 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뜻으로, “당분간 가족 이야기를 쓰지 못할 것 같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을 휩쓴 거장의 작품답게 영화가 좋았고 이야기에 더욱 푹 빠지고 싶은 마음에 소설을 읽었다. 소설 제목은 영화 제목인 〈어느 가족〉과 달리 원작 제목인 〈만비키 가족: 万引き家族〉에 더 충실하게 〈좀도둑 가족〉이다. 영화에서 모호했던 캐릭터들의 배경과 감정이 더 구체적인 언어로 묘사되어 있어서 영화보다 마음에 와닿았다. 아마 영화의 강렬한 이미지들이 책을 읽으며 되살아난 탓도 있으리라.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형사 미야베가 아이를 납치한 노부요를 조사하는 장면으로, 이때 나는 가치관의 혼란을 느꼈다. 노부야의 ‘도덕’냐 미야베의 ‘규범’이냐, 를 놓고.


미야베는 노부요처럼 죄의식이 낮은 범죄자가 특히 더 싫었다.

노부요도 싫었다. 정의를 내세우며 단죄하고, 사람의 도리를 있는 그대로 설파하는 미야베 같은 인간은.


감독이 앞선 가족 영화에서 줄곧 말하고자 했던 ‘피’보다 진한 ‘시간’의 중요성을 역시 되새기게 된다. 어느 누가 노부요와 오사무의 뜨거운 눈물 앞에서 단죄를 구할 수 있겠나.


자신이 납치당한 베란다 난간 밖으로 몸을 쑥 내미는 주리의 마지막 장면에, 그저 마음에 무거운 돌 하나를 얹을 뿐이다. 영화를 본 날 호텔에 묵었는데, 일정을 다 무르고 고양이가 있는 집으로 갈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가족, 마음속 진짜 가족이 그리운 이야기다.


난간을 잡은 손끝이 시렸다.

쓰레기장 옆에 작은 눈사람이 있었다. 누군가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주리는 난간 밖으로 몸을 쑥 내밀었다.

시선 끝자락에 무언가 들어왔다. 주리는 난간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주고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지 않은 목소리가 흐린 겨울 하늘에 울려 퍼졌다.

불러봐.

소리내어 불러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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