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소설, 태풍이 지나가고 / 무언가를 포기해야 얻을 수 있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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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바닥을 치고 싶었다. 몸에 해로운 것을 일삼고 돈을 흥청망청 쓰며,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살다가 인생의 바닥을 찍고 싶었다. 그러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앞으로 오를 일만 남게 되면 하루하루가 생의 의지로 가득할 것 같았다. 이 생각을 술자리에서 고백했을 당시 친구는 지금 네 모습이 어디를 보아서 바닥이냐, 라며 나무라서 나도 웃어넘겼다. 딱히 떨어지면 아플 만큼 높이 오르지도 않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작 영화를 사노 아키라가 소설로 각색한 <태풍이 지나가고>를 읽었다. 인생에 완전히 실패한 중년의 남자, 료타에게서 대리만족인지 안도감인지 모를 감정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작년 손꼽을 정도로 재밌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봤었지만 왜 소설을 다시 읽기 전에 이야기가 기억이 나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동안 잊고 있던 영화 속 명장면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더욱 뭉클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소설 <태풍이 지나가고>


료타는 인생의 바닥을 사는 지질한 중년의 남자다. 첫 소설이 주목받으며 전업 작가로 나섰지만 15년째 한 문장도 제대로 못 쓰고 있다. 그러는 동안 가정을 잃고 도박에 빠져 지낸다. 소설의 소재를 찾기 위해 한다는 탐정 일로는 불법 이중 거래를 하며 푼돈을 챙기고, 그렇게 번 돈을 도박으로 탕진하는 악순환의 연속을 살아간다. 집세는 물론 아들 신고 양육비까지 몇 달째 밀렸다. 돈이 없어서 죽은 아버지의 유품을 팔기까지 하는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바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료타를 이해하고 싶다. 아직 미련을 못 버린 전 부인의 새 남자친구를 질투하고, 자신의 주머니 사정에 벅찬 선물을 아들에게 하고, 소설가라는 꿈을 버리지 못한 채 틈틈이 소재를 수첩에 기록하는 료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불씨를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응원하게 된다. 다시 가족과 관계를 회복하고 소설가로 성공하길 진심으로 염원하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소설 <태풍이 지나가고>


료타는 가정과 소설가라는 두 가지 행복을 이루고 싶어 하지만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실패한다. 새로 쓰려는 소설은 첫 문장에서 턱턱 막히고, 아들 부양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밀리고 있다. 도박에서 손을 못 떼는 이유도 이 인생의 바닥을 뒹구는 쳇바퀴 생활을 뒤엎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료타에게 노모는 행복이란 무언가를 포기해야 얻을 수 있는 거라고 조언한다.


결국 료타는 행복하기 위해 어머니의 말대로 한 가지, 지나간 가정을 그제야 떠나 보낸다.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다 큰 남자’라던 탐정사무소 소장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료타는 아들과 전 부인의 과거가 될 용기를 냈다.


나는 왜 바닥을 치고 싶었을까. 돌이켜보면 정말로 인생의 바닥을 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가 꼭 쥐고 있는 수많은 희망을 내려놓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일의 경계에서 느낀 삶의 무게가 버겁고 무서웠던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도 여전히 료타의 삶과 당분간 가족 이야기를 쓰지 못할 것 같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내일을 응원한다.


“행복이라는 건 말이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잡히지 않는 거야.”

어머니의 말에 료타는 눈을 들었다. 슬픈 일이지만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잘 들어, 이제 가족이랑 만나는 건 그만둬,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다 큰 남자라는 거다. 알겠어?”

료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수첩에 ‘누군가의 과거가 될 수 있는 용기’라고 적어 두자고 속으로 생각했다.


속으로 계산해 보면서 료타는 생각했다. 료코가 결혼하면 신고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후쿠즈미는 싫어할 것이 분명하다. 그때 저항하는 것은 그만두자. 무언가를 포기한다. 과거가 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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