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 에세이 익숙한 새벽 세시 / 새벽 세시가 익숙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

2016. 11. 28.

내 감상에 앞서 작가 이석원의 추천평을 옮긴다.


“세상에는 나이가 차면 큰 어려움 없이 어른이 되어버리는 사람들과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진짜로 어른이 되기엔 무수한 난관을 거쳐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지은은 전형적인 후자의 인물로, 그가 고생스럽게 써낸 책속의 글들이 빛을 발하리라 짐작하는 이유는 이렇다. 세상에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고, 그들에게 필요한 건 서점에 넘쳐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친구 결혼식이 많아서 축의금 내느라 월세가 부족할 지경이다. 지지난 주에는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Y가 결혼을 해서 군산에 갔고, 결혼식이 끝나고 Y보다 두 달 먼저 결혼한 H의 집들이를 하러 목포에 갔다. 내게 Y와 H는 “나이가 차면 큰 어려움 없이(그럴리 없지만) 어른이 되어버리는 사람”, 그에 비해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진짜로 어른이 되기엔 무수한 난관을 거쳐야만 하는 사람” 같았다.


오지은 산문집 [익숙한 새벽 세시] 표지 ⓓ형태와내용사이


오지은의 산문집 [익숙한 새벽 세시]는 출간되었을 때부터 벼르다가, Y의 결혼식에 가는 길 고속버스 안에서, H의 집들이에 다녀오는 길 기차 안에서 읽기 위해 샀다. 하지만 정작 대부분을 잠 못 든 새벽 침대 위에서 읽었다. 나는 잠 못 든 새벽이 익숙하다. “나이를 먹어도 진짜로 어른이 되기엔 무수한 난관을 거쳐야만 하는 사람”은 곧 새벽 세시가 익숙한 사람이 아닐까. 내가 공감한 소설가 편혜영의 추천평을 추가로 옮기자면, “읽다가 여러 번 놀랐다. 내가 쓴 일기인 줄 알았다.”


책 초반부는 교토 여행을 가장한 먹방 에세이가 소용돌이처럼 내 마음을 끌어당겼고, 책 중후반부는 심해처럼 고요했다. 내용은 주로 어른이 되는 것과 꿈을 이루는 것에 대한 저자의 담백한 생각들. 그녀가 책으로 엮은 생각의 일단락이 인생의 정답일리 없지만, 새벽 세시가 익숙한 게 나만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복음처럼 느껴졌다.


책 속 복음 (모음)


좋다는 게 무엇이었지, 만족이라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이었지. 내용이 전부 바뀌어버린 사전을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 적당함이란 얼마나 충족시키기 어려운 가치인가. 적당함은 분명 뛰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이 잠을 청하는 것으로 허비되고 있다. 이 나이쯤 되면 잠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게 되길 바랐는데.


그리고 나도 어느새 그 대륙에 도착해버렸다. '야 뭐 재밌는 거 없냐'의 세계. 운이 좋았다면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다다르게 된다. 이 회색의 대륙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