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여행 / 마레 래이첼스 파리뉴욕, 퐁피두센터 갤러리라파예트 & 양혜규, 레알

2016. 9. 10.

기내는 모든 불이 꺼졌고 거기에 호응하듯 승객 대부분 잠들어 적막하다. 그 적막을 깨고 이따금씩 아기가 울음을 터뜨린다. 한 여성이 아기를 안고 복도를 오가며 어르고 달랜다.


출장을 다녀오는 길 인천공항행 비행기 안에서 일기를 쓴다. 출장을 떠나기 직전 제니퍼 워스의 소설 [콜 더 미드와이프]를 감명깊게 읽고, 출장 중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자기만의 방은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버지니아 울프가 1928년 한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것으로 페미니즘 문학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을 읽어서 일까? 일상에서 '여성의 삶을 사는 사람'이 유독 눈에 띄고 그럴 때마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고충과 불공평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마 앞으로 남녀 성평등 문제를 한발 뒤에서 바라볼만큼 여유가 생기기 전에는 여성이 처한 불평등함과 남성이 누리는 특권, 그리고 남성이 여성이 처한 불평등함과 자신들의 특권에 대해 애써 알려하지 않는(무지함까지) 상황을 마주한다면 내면의 화를 억누르지 못할 것같다.


틈틈히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출장지는 파리였는데, 두번째 방문하는 거기도 하고, 관광객지는 왠지 가기 싫었다(마지막날 가보지 않았다는 찝찝한 마음에 에펠탑에 갔는데, 관광객이 많은 곳이 싫다는 게 확실해졌다. 일단 사람 많고 시끄러운 걸 싫어하고, 관광객을 상대로 이득을 챙기려는 상인들도 싫다. 그냥 걷는데 자꾸 말을 건다.)


그래서 파리에서 뭐가 좋았냐면, [자기만의 방]을 읽는 게 좋았다. 조용한, 그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의, 젊은이들이 많은 마레의 어느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주문한 메뉴를 기다리며 책을 읽는 게 좋았고, 지난 봄에 새롭게 문을 연 레알에서 유학중인 후배를 기다리는 동안 계단에 앉아 책을 읽는 게 좋았고, 출장 기간이 겹친 다른 기자분이 퐁피두센터 전시를 둘러보는 동안 양혜규 작가의 설치작품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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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 래이첼스 MARAIS RACHEL'S


마레에서는 지난 출장때 갔던 래이첼스 카페를 다시 찾았다. 당시 메종오브제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된 도로시 메일리츤(Dorothee Meilichzon)이 디자인한 곳이라서 방문했었다. 다시 오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따로 리서치한 곳이 없던 터라 거리를 지나다가 자연스럽게 발길이 옮겨지더라. 토요일 오후였는데 역시 사람이 많았다. 지난번과 같이 빈 테이블은 모두 예약이었고 바 자리도 몇 개 남지 않았다. 케이크가 진열된 바에 앉아 역시 지난번과 같이 플레인 치즈케이크와 커피를 마셨다.



마레 래이첼스


마레 래이첼스, 치즈케이크와 그란데 아메리카노


마레 Square Leopold Achille, 21번째 생일파티가 한창이었다.


마레 Square Leopold Achille



마레 오에프알, 파리뉴욕 MARAIS OFR, PARIS NEW YORK


마레쪽에서 점심도 맛있게 먹었는데, ofr 서점 근처에 가면 왠지 내 취향에 맞는 음식점이 있을 것 같아서 일단 ofr 을 찾았다. 서점 안에는 이건 사야해, 하는 책이 없어서 구경만 하고 나왔고, 퐁피두센터 방면으로 걸으며 몇몇 레스토랑을 지나치고 파리뉴욕 Paris New York 이라는 작은 음식점을 발견했다. 거기서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 그리고 음료 세트를 점심으로 먹었다.


테라스에 앉았는데 내 의자 밑에 옆테이블에 주인이 앉아 있는, 크고 까만 개가 엎드려 있었다. 주인이 식사를 마치는 걸 보고 나는 개가 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주인은 둥근 얼굴에 금발이며 깊은 눈망울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개를 1분간 안아주더라(식사를 마치고 친구들이 기다리는 동안의 1분은, 내가 느끼기에 정말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누군가를 1분간 안아 봤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았고, 그 개는 자신이 얼마나 사랑 받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또 나는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한 적이 있을까 생각했다. 개는 주인이 따뜻하게 앉아준 게 좋았는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는데, 주인이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을 혼자 내버려두고 떠나자 땅에 떨어진 자신의 목줄을 물고 주인에게 달려갔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마레 ofr 서점


마레 레스토랑 Nanashi와 카페 핀슨 Cafe Pinson 이 있는 골목


그 골목을 지나면 보이는 레스토랑 파리뉴욕


파리뉴욕에서 햄버거+감자튀김+레모네이드 세트를 먹었다.



퐁피두센터, 갤러리라파예트 & 양혜규 POMPIDOU CENTRE, GALERIES LAFAYETTE & HAEGUE YANG


퐁피두센터 홀에 양혜규 작가의 설치작품이 2016 프랑스 한국의 해를 맞아 전시되고 있었다. 그날이 마지막날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양혜규 작가는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에서도 올해 F/W 시즌을 맞아 갤러리 라파예트와 협업하여 쇼윈도와 내부에 작품을 설치했더라. 이 역시 예뻤다. 양혜규 작가의 토속적인 작품이 '이교적 근대(Quasi-Pagan Modern)'라는 시즌 주제와도 잘어울려서 성공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딱히 쇼핑할 건 없어서 작품만 보고 수많은 쇼핑 인파(대부분 중국 관광객이었다)를 뚫고 거리로 빠져나왔다.


골목길 너머로 보이는 퐁피두센터


퐁피두센터와 광장


퐁피두센터 2층 도서관 테라스


퐁피두센터에 전시되었던 양혜규작가 작품


퐁피두센터에 전시되었던 양혜규작가 작품


퐁피두센터에 전시되었던 양혜규작가 작품


퐁피두센터에 전시되었던 양혜규작가 작품, 2층 카페에서 본 모습


퐁피두센터에 전시되었던 양혜규작가 작품, 2층 카페에서 본 모습


갤러리 라파예트


갤러리라파예트 X 양혜규


갤러리라파예트 X 양혜규


갤러리라파예트 X 양혜규


갤러리라파예트 X 양혜규


갤러리라파예트 X 양혜규


레알 LES HALLES


퐁피두센터에서 서쪽으로 조금 걸으면 과거 파리의 중심 시장이었던 레알이 나온다. 레알은 1183년부터 파리 중심부의 전통시장이었다고 하는데, 1970년대 지하철노선이 개통에 맞추어 마치 폭포수를 연상캐하는 유리 건축물로 재건축되었다.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 상업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시는 2007년 새로운 공모전을 냈고 프랑스 건축가 패트릭 버거(Patrick Berger)와 자크 앙쥐티(Jacques Anziutti)의 제안이 제안한 캐노피가 최종 선정, 그게 올해 4월 완공된 것이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정치적(난 잘 모르지만)으로도 많은 비판을 받는 듯한데, 아직 공원 쪽이 한창 공사중이라 다 완공되면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개발을 아주 천천히(유로 2016에 맞추어서 급하게 완공됐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계획안부터 무려 10년이 걸린 건축물, 아직 일부는 공사중) 시간을 갖고 진행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레알 입구


레알 캐노피


레알 캐노피너머로 보이는 Jardin Nelson Mandela 공사구역


레알


레알 아래를 내려다본 모습


레알


아직 공사중인 레알 Jardin Nelson Mande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