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씽

2022. 11. 16.

멀티태스킹은 그동안 나의 생존 수단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최소 6개의 과목을 두루 잘해야 했고 미대입시를 준비한 나는 그림까지 잘 그려야 했다. 디자인 잡지사 에디터가 된 이후로는 리서치, 취재, 글쓰기, 데이터관리, 포토그래퍼와 편집 디자이너와의 협업 등 다양한 업무를 두루 잘해야 했다. 당시 커리어 과정에서 알게 됐던 남성 패션잡지 편집장님께서도 마감이 다가오면 한 가지 글쓰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몇 개의 글을 모니터에 띄워 놓고 옮겨가며 쓴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랬다. 사회생활 첫 5년은 멀티태스킹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세 번째 커리어였던 광고회사는 멀티태스킹 능력보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결과를 추구했다. 연봉협상 과정에서 대표님께 업무평가를 받았는데, 나를 정확하게 평가해주셔서 놀랐다. 그 평가는 이랬다. '무슨 일이든 맡으면 특정 수준까지는 누구보다 빠르게 해내지만, 많은 시간이 주어져도 최고 수준의 결과를 내지는 못한다.' 그동안 멀티태스킹이 곧 능력이라 믿고 커리어를 쌓아오던 나였기에 어쩌면 당연한 평가였다. 나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키우거나, 하나에 집중해 최고의 결과를 낸다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이제 후자의 길을 가야 할 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원씽 표지

멀티태스킹은 허상이다, 라는 것을 <원씽>을 읽고 다시한번 깨닫는다. 멀티태스킹은 여러 일을 한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여러 개의 일을 하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하나의 일에서 다른 일로 전환할 때는 준비시간 필요하고 그만큼 생산성은 떨어진다. 문제를 깨달았으니 앞으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명확하다. 해야 할 것은 최고의 결과를 지향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멀티태스킹이다. 최고의 결과를 생산하는 것은 많은 시간(정확히는 1만 시간, 하루 3시간씩 10년)이 필요하다. 그러니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는 것부터 시도하는 중이다.


멀티태스킹 하지 않는 방법은 단순하다. 첫째, 한 주동안 해야 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둘째, 최우선 한 가지에 집중한다. 셋째, 그것을 해내기 위해 오늘 하루 해야 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넷째, 최우선 한 가지에 집중한다. 즉, 우선순위를 정하고 최우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의 반복이다. 한 가지 일을 했다면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평소 관심 있던 것으로 여가 시간을 보낸다. 나는 그 과정에서 그동안 내가 놓치고 살았던 일상의 풍요로움과 행복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수준 높은 결과물을 달성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파레토 법칙을 믿는다.  상위 20%가 전체 생산의 80%를 해낸다. 목표를 100% 달성하기 위해 해야할 일이 100개가 있다면, 그중 20개를 해내면 전체 목표의 80% 달성할 수 있고, 그 20개 중 4개를 해내면 전체 목표의 64%를 이룰 수 있고, 그 4개 중 1개를 해내면 전체 목표의 50% 이상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내가 추구하는 삶에 빗대자면, 목표 100%는 '경제적 여유'를,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하는 100가지 일 중 하지 않는 99개는 '시간적 여유'를 상징한다. 나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부자를 꿈꾼다. 이 꿈을 달성하는 방법은 가능한 큰 목표를 세우고 원씽에 몰입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