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30.
3년 전 교토 여행을 다녀왔던 즈음 ‘와비사비’ 미의식에 한창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미니멀리즘’의 연장선 상에 있는 듯 보였지만 그것으로 포괄할 수 없는 ‘어떤’ 감각이 와비사비에 존재했다. 그 어떤 감각은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면 좌우 균형이 정확히 맞지 않고 표면이 거친 도자기라던가 조도가 균일하지 않은 호롱불 같은 불완전한 형상이 그려진다. 나는 무어라 단언할 수 없는 이 감각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출간되었던 <와비사비 라이프> (윌북, 2017)와 <와비사비> (안그라픽스, 2019)를 읽었다.
줄리 포인터 애덤스가 쓴 <와비사비 라이프>가 킨포크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며 보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엮은 책답게 동서양 각국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와비사비의 개념에 접근한 (그래서 그저 감상에 그쳤던) 반면, 레너드 코렌이 쓴 <와비사비>는 미술사와 철학을 바탕으로 와비사비를 구체적으로 개념화하려는 시도가 좋았다. 미의식을 논리적으로 접근한 시도가 좋았던 점과 역설적이게, 마치 속편이라도 있는 듯 책의 마무리가 매끄럽지 않게 뚝 끊기는 듯한 느낌도 싫지 않았다. 애초에 작가는 독자를 설득하려고 하기보다 스스로 이해한 와비사비의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 꾸밈없이 책을 써 내려 간 듯했기 때문이다.
<예술가란 무엇인가> (안그라픽스, 2021)는 <와비사비> 저자 레너드 코렌의 신작이다. 와비사비가 그렇듯 예술 역시 한마디로 형언할 수 없다. 나는 지난 독서에서 느낀 좋은 감상을 바탕으로 그가 예술과 예술가의 생각을 어떻게 이해하려고 시도했는지가 궁금해서 책을 펼쳤다. 그가 이해하려고 노력한 ‘예술’은 현대 미술(Modern Art)이다. 그래서 예술이 무엇인지 정의하며 시작되는 책의 첫 꼭지는 마르셀 뒤샹과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마르셀 뒤샹에 뒤이어 현대 예술가 5인과 그들의 대표작을 추적하며 예술가란 무엇인지 정의한다. 현대 예술가 5인은 존 케이지, 크리스토 & 장클로드, 도널드 저드, 온 가와라, 리처드 세라이다.
서문
예술이 무엇인지 규정한다 (마르셀 뒤샹)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존 케이지)
떠들썩하고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띈다 (크리스토 & 장클로드)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한다 (도널드 저드)
사물을 의미 있게 만든다 (온 가와라)
한 가지 더 (리처드 세라)
주석
인용문 출처
옮긴이의 말
저자가 책을 쓰며 수많은 현대 예술가를 조사했겠지만 그가 선택한 6인의 예술가(마르셀 뒤샹 포함)는 저자에게 ‘예술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제를 하나씩 남긴다. 그리고 그 명제는 거꾸로 각 꼭지의 소제목이 되어 목차에 기록됐다. (위 참고, 이탤릭체는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됨) 책에 기술된 예술 작품에 얽힌 배경도 재미있고, 각 꼭지의 소제목에 귀결하는 저자의 감상도 흥미롭다. 하지만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리처드 세라를 다룬 마지막 꼭지의 소제목이 ‘한 가지 더’라는 점이 의아했다. 아마도 예술가 6인을 통해 단편적으로 정리한 예술가의 정의를 하나로 엮어내려고 한 저자의 의도라고 생각했다.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작품만이 앞서 소개한 예술가 5인의 대표 작품과 달리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특정 장소에 맞추어 제작된 설치작품이 비평가의 비판과 공개 토론 끝에 철거되며 그 생명을 다 한 것이다. 저자는 리처드 세라가 실패를 딛고 성장해나가는 행보를 바탕으로 앞서 소개한 5인의 예술가 역시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관습을 무시하고 그저 결과에 모든 것을 맡겼”고, “‘의미심장한’ 예술을 만들기 위해서 예술가는 현재의 정체된 상태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야만”했다라며, 예술가의 저항 정신을 말한다.
저자는 아마도 ‘예술가란 무엇인가’를 규정함으로써 스스로 예술가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어떤 삶의 자세를 취해야 했는지 이해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기존의 관습에 저항하고 현재 정체된 상태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예술가라고 (당사자가 스스로 예술가라 여기는 것과 무관하게) 말하는 것만 같다. 이 생각을 보강하는 책 서문의 일부를 그대로 옮기며 포스팅을 마친다.
우리는 예술 창작자를 예술가라 부른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시험을 치를 필요도 없고, 자격증도 필요 없으며,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지도 않는다. 같은 의미로 누구나 자신을 예술가라 칭해도 된다. (이와 반대로, 자신을 예술가라 칭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예술가가 되는 방법은 이 지구상에 있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