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캠핑장 반달곰이살던숲 솔로캠핑

2021. 10. 31.

시월의 마지막 주말 경기도 화성 반달곰이살던숲 캠핑장으로 솔로캠핑을 다녀왔다. 월드컵대교와 서부간선지하도로가 개통되며 편도 1시간 남짓한 거리가 부담 없었다. 빨갛게 노랗게 물든 나무 아래에서 가을을 만끽하는 감성 캠핑을 기대하고 두 달 전쯤 예약을 했지만 막상 내가 머문 사이트 주변의 나무들이 기대만큼 물들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운 캠핑이 됐다.

 

솔로캠핑은 이번에 세 번째다. 여럿이서도 캠핑을 가 봤지만 줄곧 혼자서 캠핑하는 것이 체질에 맞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캠핑을 떠나는 이유와도 연관된 것 같은데, 나는 타인과 대화를 그리 오래하지 못하고 술자리도 좋아하지 않는 반면에 혼자서 생각에 잠기는 걸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에 여행을 다닐 때도 혼자인 편이 좋았다.

 

이번 캠핑에서 새로 산 스노우피크 헥사타프 아이보리 M을 첫 피칭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L사이즈 타프는 텐트와 색상이 맞지 않고 사용해보니 커서 당근마켓으로 판매했다. 새로 산 타프가 색상과 사이즈도 마음에 들지만, 한국어로 모닥불이라는 뜻의 타키비 たきび 라인답게 타프 아래에서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이너루프가 포함되어 있어서 쌀쌀한 가을 캠핑에 어울린다.

 

반달곰이살던숲 캠핑장은 캠프사이트를 선착순으로 정한다. 도착했을 대는 이미 많은 가족 단위 많은 팀이 사이트를 차지했다. (나는 몰랐지만 할로윈데이라 더 요란했다.) 나는 가족 사이에 끼어 혼자 캠핑하는 것을 원치 않아 차량 진입이 안 되는 백패킹 계곡존 C 꼭대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만큼 캠핑장비들을 손수 옮기느라 힘들었지만 머무는 동안 조용하고 여유로워서 좋았다.

 

캠핑장 사장님께서 먼 곳에 자리 잡은 내 사이트에 두어 번 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했고 읽는 책이 재밌어서 딱히 지루할 틈은 없었다. 모닥불을 꺼트리지 않고 피우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잘 갔다. 요즘 일 생각에 사로잡혀 반 미친 사람처럼 일상을 보냈는데 이렇게 자연 속에서 미뤘던 독서를 하고 멍 때리고 나니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자세한 캠핑 이야기는 사진과 함께 덧붙인다.

 

화성 반달곰이살던숲 캠핑장 진입로 단풍
화성 반달곰이살던숲 캠핑장 입구 사이트 옆 주차가 안 되고 주차장까지 꽤 걸어야 한다
화성 반달곰이살던숲 캠핑장은 과거에 자연농원으로 사용하던 시설을 보수하여 캠핑장으로 얼마전 열었다고 한다. 사진은 아마도 자연농원 베어팜 캐릭터인 것 같다.
화성 반달곰이살덮숲 사이트. 사이트는 전부 나무데크이다. 나는 모르고 갔는데 이날 할로윈데이 주말이라 할로윈 복장을 한 아이들과 할로윈 장식이 사이트이곳저곳에 꾸며졌다.
나는 백패킹 계속존 꼭대기에 자리를 잡았다. 협곡을 따라 9개의 사이트가 있는데 4팀만 듬성듬성 자리를 잡아 한적했다. 다만 협곡 아래에서 꼭대기까지 캠핑장비를 옮기느라 꽤 힘들었다. 내려갈 때 캠핑장 사장님께서 짐 몇 가지를 들어 주셔서 감사했다.
사이트에 텐트타프 피칭을 마쳤다. 지난 캠핑때 장만한 스노우피크 쉘프컨테이너 M과 롬버스 컨테이너 다리 세트를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가을캠핑에 새로 장만한 스노우피크 타키비 헥사타프. 스킨 아래 이너루프가 있어 조금 무거우나 타프 아래에서 화로에 불을 피울 수 있는 낭만 있는 타프다. 텐트와 색상을 맞추어 U.S. 마켓 온리 아이보리 컬러로 직구했다.
캠핑장 진입로에서 봤던 단풍에 비하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단풍은 단풍. 가을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고생해서 캠핑장 꼭대기에 오른 보람이 있다. 시야가 탁 트이고 사방이 자연으로 가득하다.
캠핑 시작하며 장만한 발뮤다 더랜턴. 잘 사용하고 있다. 메인 라이팅으로는 밝기가 부족하나 밤에 화장실을 갈 때 사용하거나 무드등으로 사용하기 좋다.
늦은밤 새벽 추위를 책임져줄 화로대. 캠핑장 매점에서 장작 1망을 샀다.
캠핑 두어번 다녀본 다음 샀던 스노우피크 IGT엔트리라인. 내 입맛대로 꾸밀 수 있는 IGT라인 답게 이것저것 더 사게 되더라. 다음에는 테이블 옆에 붙일 수 있는 수납 선반을 추가할까 싶다.
캠핑장에서 먹은 첫 끼. 자연농원에서 사육하는 반달곰이 있는데 (그래서 캠핑장 이름이 반달곰이살던숲) 먹이주기 체험 용으로 캠핑장에서 나눠줬다. 나는 반달곰에게 먹이를 안 줄거라서 내가 먹었다.
이번 캠핑에 전기장판도 챙겼다. 낙엽 하나가 나와 함께 들어왔다. 감성이라 바로 치우지 않고 조금 두다가 치웠다.
텐트에서 쉬다가 5시쯤 저녁 준비를 한다. 요즘 해가 부쩍 일찍 져서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렀다. 미니멀캠퍼 티타늄 솔로쿠커 1.6L에 햇반이 쏙 들어간다. 끓는 물에 10분 데우면 밥 한공기 준비 완료.
오늘 메인메뉴. 언제나 그렇듯 삼겹살. 화로대에 구우니 청소가 번거로워 무인양품 버너를 추가로 챙겨왔다. 밥하고 국하고 고기도 구워야 하다보니 캠핑장에서 언제나 불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더 챙기기도 무게 때문에 힘들다.
저녁 6시가 넘으니 본격적으로 해가 지기 시작. 조명을 켠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본격적으로 화로에 불을 지핀다. 타프 아래에 불을 지피니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금방 익숙해지고 편안했다.
불을 안 꺼지게 지켜보며 장작을 하나 둘 넣다보면 시간도 금새 지난다.
타키비타프 이너 스킨. 재질이 천인데 아마도 코팅을 했나보다. 설치는 쉬운데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어서 타프 모양을 잡기가 조금 어려웠다.
화로에 불을 지피며 간단하게 혼술상을 차린다.
술을 잘 못해서 얼음잔에 위스키 조금과 콜라를 섞었다.
불멍하다 지루하면 책을 읽었다. 요즘 레이먼드 카버 전기를 읽고 있는데 캠핑장에 가져오기엔 너무 두꺼운 책이라 예전에 읽은 소설집을 챙겼다. 이날 책에 수록된 <청바지 다음에> <너무 많은 물이 집 가까이에> 2편을 읽었다. 두 번째 읽은 작품이 레이먼드 카버 작품 치고 서스펜스가 있어서 더 눈길을 끌었다. 이야기의 소재도 화자 남편이 낚시 캠핑장에서 겪은 일이라 흥미로웠다.
책을 읽다 무심코 단아가 물어 해진 갈피끈을 본다. 단아는 안 울고 잘 자고 있으려나 조금 걱정이 되고 혼자 두고 멀리 온 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고양이를 캠핑장에 데려올 순 없다.
소화가 다 되고 입이 심심해서 고구마를 구웠다. 얼마나 구워야하는 지 몰라 누나에게 물어봤더니 젖가락으로 찔러보고 쑥 들어가면 다 된거란다. 귀찮아서 짐작으로 구웠다.
너무 많이 구워진 탓인가, 바싹 탄 껍질과 함께 고구마 절반이 버려졌다. 그래도 주전부리할 양은 돼서 다행이다.
늦은 밤 협곡을 따라 캠프 사이트가 불을 밝힌다. 12시 전후로 다들 잠자리에 들었는데 나는 토트넘 새벽 경기를 보느라 3시가 넘어서 잠에 들었다.
밤 하늘을 올려 보니 별이 꽤 많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얼마 못 자고 일어나 몸이 가볍진 않았는데 텐트 문을 여니 차고 상쾌한 공기가 느껴져 기분 좋앗다.
아침에 쌀쌀하길래 어제 피우다 얼마 남지 않은 장작을 마저 태운다.
아침 첫 끼는 편의점에서 산 과일팩과 모닝커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라면을 끓여먹었다.
매번 라면을 냄비에 끓여서 먹다가 이번에 처음 컵라면을 먹어 봤다. 전날 설거지를 다음날 하는 편이라 보통 냄비를 한번 씻고 와서 끓였는데 그런 번거로움이 없으니 좋다. 일회용을 줄이려 노력하는데 쉽지가 않다.
백패킹 계곡존에서 메인 세면실까지 꽤 멀었는데 다행이 사이트 주변 산속에 이렇게 수도를 만들어 주셨다. 여기서 씻고 설거지도 했다.
정오 체크아웃시간이 다가오니 산속에 해가 내리쬔다. 장비 정리를 하다가 마음에 드는 장비만 남기고 사진 한 컷 남긴다. 매번 캠핑을 할 때마다 장비가 너무 많아 벅찬데, 딱 이 세팅만 챙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실상은 이보다 2~3배는 항상 되더라. 언젠가 진짜 미니멀캠퍼가 되어야지.
해가 난 김에 테이블을 싹 닦고 살균 중이다.
장비 정리한는 것도 매번 일이지만, 이번 캠핑은 산 아래까지 들고 내려가는 것도 일이었다. 하지만 한번에 하나씩 내리다 보니 금새 끝이 났다. 그리고 캠핑장 사장님도 몇 개 들어 주셔서 기분 좋게 체크아웃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