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3.
덴마크 사람들은 첫 월급으로
디자이너 체어를 산다.
인테리어 디자인 월간지 에디터로 첫 직장을 시작하며 돈을 모으자 마자 산 건 프리츠한센 시리즈 7 빈티지 체어였다. 사실 소제목으로 단 첫 월급으로 산 건 아니었다. 당시 100만원 중반이 안 되는 월 수령액에 50만원 월세를 내던 나로서 첫 월급으로 무언가 살 수는 없었고 돈을 몇 달 모아서 사야만 했다 (그러니 상징적 의미로 ‘첫 월급’이라 표현한다). 덴마크 사람들은 첫 월급으로 ‘디자이너’ ‘체어’를 산다고 한다. 정확한 데이터로 이 명제를 증명한 자료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한국인이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내복을 산다는 것과 비슷한 상징적 의미로서의 명제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왜 ‘디자이너’의 ‘체어’를 사는 걸까.
덴마크는 가구가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 당시 전설적인 디자이너들을 많이 배출한 국가 답게 ‘디자이너’ 가구를 일상에서 보고 자랐다. 학교에서부터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데스크와 체어를 사용했을 정도다. 다시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에 비유해 보면 삼성, LG 가전을 쓰는 것과 비슷할 터. 그러니 ‘디자이너’의 가구를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체어’를 사는 이유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밥을 먹을 때, 글을 쓸 때, TV를 볼 때 의자가 필요하다. 다른 가구에 비해 부피도 적고, 공간의 한가운데 놓이기에 존재감도 크다. 아마 그런 이유로 ‘디자이너’ ‘체어’를 살 것이다. 내가 시리즈 7 체어를 산 것도 그런 탓이다.
두 번째 이사를 하며 산 디자이너 조명,
그리고 디자이너 가구 구매 계획.
당시 인포멀웨어 온라인 쇼핑몰에서 시리즈 7 체어 빈티지 제품을 눈팅을 몇 개월 하다가 돈이 모이자 마자 주문했고 당일 퀵 배송을 받았다. 2년 정도를 사용하다가 원룸 인테리어를 가리모쿠 원시터 소파 중심으로 바꾸며 샀던 가격 거의 그대로 중고로 판매했다. 그것이 나의 오리지널 빈티지 라이프의 시작이었다. 2룸 아파트로 이사하면서는 가구에 투자하기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가구는 가장 심플한 무인양품의 것들로 맞추고 ‘디자이너 조명’을 샀다. 다이닝 공간에 놓은 펜던트 조명은 조지 넬선의 버블램프로, 리빙룸 공간에 놓을 플로어 조명은 베르너 팬톤의 판텔라 플로어램프로, 침실 공간에 둘 독서 조명은 오키 사토의 NJP 월램프로 샀다.
이사를 한지 1년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디자이너 가구로 눈을 돌린다. 앞서 연급한 이유로 첫 가구로 의자를 사기로 했다. 얼마전 영업을 시작한 판교 TAS 타스뮤지엄에 갖고 싶던 프리츠한센 앤트체어 빈티지 2점이 놓여 구경할 겸 갔다가 가격이 예산과 맞아 구매했다. 앤트 체어인 이유는 시리즈 7 체어와 함께 가장 많이 팔리는 베스트 & 스테디 셀러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굿 디자인 임은 물론이고, 후에 가구를 되팔고자 했을 때 수요도 많아 제 값을 받을 수 있다). 작은 날개가 달린 듯한 인상의 시리즈 7 체어가 외향적이고 환대의 느낌을 준다면, 앤트 체어는 내향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주어서, 앤트체어가 내가 지향하는 인테리어와 더 가까웠다.
TAS 타스뮤지엄에서 산
아르네 야콥센 ‘앤트 체어’
TAS 타스뮤지엄은 내가 살고 있는 서대문구에서 1시간 30분이 족히 걸리는 먼 거리였다. 하지만 앤트체어와 함께 평소 실물로 보고 싶던 미네르바 소파를 만날 수 있는 점, 그리고 잘 모르고 있던 한스 올렌의 디자인을 공부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방문할 가치가 충분했다. TAS 타스뮤지엄에는 90년대 중반 미드센츄리에 생산된 오리지널 앤트체어 2점이 있었다. 하지만 둘을 함께 놓기에 수종이 달라 잠시 고민했다. 하나는 어두운 티크 수종이고, 다른 하나는 밝은 월넛 수종이었다. 하지만 함께 놓인 실물을 보니, 오히려 수종이 조금 달라 세련되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선택지도 없었다). 월넛 수종은 생활감이 많이 느껴져서 조금 할인을 받았다.
왜 빈티지 가구를 샀는가? 우선 몇 년 전 인포멀웨어에서 시리즈 7 체어 빈티지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는 동시에 빠른 배송 탓이 컸다. 보통 리퍼블릭 오브 프리츠한센에서 의자를 주문하면 매장에 가서 몇 주를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빈티지 제품은 재고를 갖고 판매하기 때문에 판매자와 협상을 통해 빠르게 제품을 들일 수 있다. 이번에 빈티지 체어를 사며 느낀 매력은, ‘유니크’함이다. 내가 TAS 타스뮤지엄에서 산 앤트체어를 예로 들자면, 티크 소재는 수종이 보호수로 지정된 탓에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또한, 반 세기 넘는 세월을 거친 만큼, 생활감이 느껴져 공간에 놓았을 때 새 제품보다 더 존재감이 크다. 나중에 리셀하게 될 때 때 유니크 빈티지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된 값을 받고 판매할 여지도 크다.
앤트체어와 같이 놓을 테이블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내 공간에 놓은 사진은 없다. 추후에 공개하는 것으로 하고, 피터흐비트 디자인한 미네르바 데이베드 소파와 한스올렌이 디자인한 테이블은 아래 사진과 함께 소개합니다. 앞으로 이 두 자이너에 대해 찾아보며 빈티지 가구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