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현동 피크닉 제로컴플렉스 런치 후기

2021. 2. 4.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지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작년 봄에는 여름이면 끝나겠지 싶었지만, 이제는 2021년 올해 안에 끝나는 것도 감사하다. 거리두기를 하며 가족과 친구를 만나는 시간도 줄었고, 즐겨 찾던 공간을 방문하는 일도 현저히 줄었다. 오롯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처음에 거리두기가 금방 끝날 것 처럼 오판했듯이, 집에 머무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라 오판했다. 시간이 지나니 피로감이 들어 좋아하는 거리를 걷고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가는 걸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제로컴플렉스 런치를 예약했고 크게 기대했던 것 같다. 얼마 만의 파인다이닝 외식인가. 제로컴플렉스가 위치한 피크닉은 처음 생겼을 시절부터 줄곧 방문 위시리스트에 있었으나 게으름을 피우며 미뤘던 탓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탓으로 이번이 첫 방문이되었다. 비록 진행중인 전시는 없어, 전시 관람을 하진 못했지만 간만에 파인다이닝으로 마음이 들떴다. 날씨가 한껏 풀린 며칠전 설레는 마음으로 제로컴플렉스를 찾았다.

 

제로컴플렉스의 첫인상은 여느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과 달랐다. 레스토랑은 창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여백이 많았고 접객도 조금 건조하다고 느낄만큼 절제됐다. 남향 전면창으로 비추는 햇살이 유일하게 따뜻했다. 메뉴 안내판도 A4 용지에 식재료만 적어둔 정도로 심플하다. 디너는 어쩐지 모르지만 알라카르테는 제공하지 않고 오직 하나의 코스요리만 제공했다. 파프리카, 아보카도, 새우로 요리한 웰컴디쉬가 인상적이었고 메인디쉬 전에 나온 아욱, 코끼리마늘, 골뱅이 요리도 좋았다.

 

좋았던 경험 몇 가지를 덧붙이자면, 제로컴플렉스의 오너쉐프인 이충후 쉐프는 과거 인터뷰에서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방문하는 과정 전체가 고객경험이란 말을 했다. 강남에 있다가 남산자락 회현동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이곳을 찾아가는 길 경복궁을 지나 굽어진 회현 뒷골목 끝에 마주한 탁 트인 피크닉을 마주한 경험은 시큼달콤한 웰컴디쉬를 닮아 감정이 풍요로웠다. 아쉬웠던 점은 디쉬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길었던 것 (손님이 많았던 탓일수도) 뿐이다. (아침을 거르고 방문한 내 탓일지도.)

 

더 자세한 감상은 사진과 함께 남기며,
쉐프님 잘 먹었습니다.

 

회현동 피크닉 3층에 위치한 제로컴플렉스
사진으로만 보던 피크닉 실물 영접
피크닉 전시는 휴관 중.
낮고 긴 겨울 정오의 빛을 한몸에 받는 것이 피크닉의 매력
계단을 올라 제로컴플렉스로 향한다 (엘리베이터는 없다)
입구에는 이날의 메뉴가 놓여 있고, 미쉘린가이드 2021 1스타 표지가 붙었다
제로컴플렉스 점내 풍경 평일 오후임에도 손님이 많았다
높은 창으로 창가 2열까지 햇살이 비춘다. 햇살은 좋았으나 너무 강해서 조금 불편했다
제로컴플렉스 가장 안쪽의 비교적 프라이빗한 자리
제로컴플렉스 창밖 풍경. 회현동의 오래된 나무의 그림자가 식사하는 내내 인상적이었다
제로컴플렉스 테이블 세팅. 방금 켠 향초에 괜히 기분이 좋다
코스메뉴 안내서 식재료를 순서대로 적어둔 것이 인상적이다
웰컴디쉬로 파프리카 아보카도 새우가 나온다는데 식재료만 적혀 있어서 어떤 요리일지 몹시 궁금했다
이것이 웰컴디쉬. 어디서도 보지 못한 비주얼
깨부시고 비벼 먹는 요리인데 그렇게 하는 게 꽤 재밌더라
시큼달콤한 맛이 식욕을 너무 돋궈 위가 몹시 힘들어했다 (공복으로 방문하면 메인 기다리느라 힘들 수 있다)
디쉬와 디쉬 사이에 행갈이를 위해 탄산수를 주문. 논알콜 와인은 없다
이어서 한입음식이 나왔다. 식감이 독특했다.
한입에 넣기엔 조금 벅찬 크기. 맛있음
에피타이저 수프. 점점 입맛을 돋구는데 디쉬가 생각보다 늦게 나와 (10~15분은 족히 걸린 듯) 계속해서 위가 힘들어 하는 중.
식전빵으로 조금 허기를 달랜다. 빵은 그저그랬다. (요즘 빵 맛집이 워낙 많아져 빵 기대치 역시 워낙 높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마주한 메인 디쉬. 아귀, 병아리콩, 섬초로 만든 생선요리. 오징어도 들었다.
이곳 맛도 맛이지만 비주얼이 압권이다. 보기 좋은 게 먹기도 좋다. 인정
만족스런 메인디쉬를 해치우니 어느덧 시간이 1시간 30분을 훌쩍 지났다. 이제 디저트를 기다린다.
디저트는 요거트, 메이플, 허브로 만든 요리. 앞선 요리들도 비주얼이 참 좋았는데 요녀석이 베스트. 허브는 조금 써서 많이 남겼다
한바탕 해치운 자리를 뒤로하고 레스토랑을 나선다
3층 복도에서 보이는 창밖 풍경. 배가 부르니 아름다운 풍경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