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2.
2년이 더 됐을까.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을 읽었다. 당시에는 그저 잘 읽히는 소설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최근에 다시 읽게 되었다. 하루에 한 편을 읽고 소설 속 주인공의 삶에 대해 생각하다가 잠들기에 좋은 적당한 분량이 우선 마음에 들었지만, 그것보다 예상치 못한 일상에서 떠오르는 소설 속 장면이 가진 시각적 강렬함에 이끌렸던 탓이 크다. 전면 창 너머로 마당이 내다보이는 카페에서 비 내리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소설의 어느 장면이 갑자기 떠오르는 식이었다. 그런 일이 쌓이다 보니, 과거에 겪었던 일을 추억하기 위해 오래된 사진을 꺼내 보는 애틋한 심정으로 소설을 다시 펼치게 된 것이다.
《대성당》에 실린 단편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을 반복해서 읽었다. 어젯밤을 포함하여 5일 동안 내리 5번을 읽었다. 이 단편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블로그에 쓰고 있는 이 글은 〈내가 전화를 거는 곳〉에 대한 나의 해석이 되어야 마땅하겠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설을 읽고 스스로 납득할만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실패를 통해 새롭게 파악하고 싶은 것이 어젯밤에 떠올랐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함이다.
먼저, 어떤 이유에서 새롭게 파악하고 싶은 것이 떠올랐는지를 정리해야겠다. 이 소설을 며칠을 반복해서 읽었던 것은 서사가 쉽게 파악되지 않은 난해한 구성 때문이었다. 소설은 주인공이 술 끊기 시설에서 이틀 동안 보고 들은 것과, 그것을 통해 떠오른 생각과 행동한 일을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독자에게 친절한 화자가 아니다. 그가 서술하는 일이 일어난 시점은 두서없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막바지까지 읽은 뒤에야 그가 겪은 일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 이 소설을 과거에 읽었지만 내용이 생소했던 것은 구성 때문일 것이다.
나는 몇 번의 독서 끝에 주인공이 겪은 일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소설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을 진척이 없었다. 그리고 몇 가지 의문도 남았다. 소설에 유럽 곳곳을 여행하는 사람은 왜 등장했을까? J.P.는 자신이 굴뚝 청소부가 된 계기를 주인공에게 이야기할 때, 그 계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우물에 빠졌던 일을 왜 이야기했을까? 주인공은 신혼의 어느날 아침, 아침 일찍 노인이 페인트 칠을 하러왔던 일은 왜 떠올렸을까? 등등. 그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추측은 떠올랐지만, 스스로 납득할 만큼 논리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의문을 덮고 나니,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처음에 난해하다고 여겨졌던 소설의 구성이, 내가 일상에서 과거를 추억하는 구성과 닮았다는 것이다. 독자에게 서사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소설에서는 난해할 수 있으나, 과거의 특정 시점을 두서없이 추억하는 일은 나뿐만 아니라, 아마 모든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씩 하는 익숙한 과정일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서사를 그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그렇게 믿는) 스스로로서는 추억을 끄집어내는 시점이 어떻든 그것의 맥락을 이미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구성을 짰다기보다, 그저 주인공에 감정을 맡긴 채 생각이 떠오르는 순서대로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절망했던 지점, 유럽 곳곳을 여행하는 사람과, J.P.가 어릴 때 우물에 빠졌던 일, 등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은 애초에 무의미했다. 의미가 없이 작가가 실제 겪었었거나, 누군가에게 들었거나, 어쩌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떠오른 탓에 쓰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작가가 글에 의미를 의도적으로 담았던 아니던 간에, 독자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별 개의 문제겠지만.)
그다음에 내가 해야할 일, 그래서 새롭게 파악하고 싶게된 것은, 작가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왜 이런 소설이 쓰였는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성당》 뒤에 실린 작가 연보를 들춰 본다. 대략적으로만 훑어도 〈내가 전화를 거는 곳〉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일들이 많다. 1976년,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하여 네 번 입원. 1979년, 테스 갤러거와 함께 살기 시작. 1982년, 아내와 정식으로 이혼. 1983년, 《대성당》 출간. 이런 내용들. 오늘부터는 작가의 생애를 소개하는 책, 〈레이먼드 카버〉(아르테)를 읽기 시작했다.
이다음에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읽고 또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된다면, 오늘과 같은 실패담이 아닌, 어떤 인식(소설의 의미가 되었든, 소설의 의미란 없음을 확실히 앎이 되었든)을 획득한 성공담을 쓰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