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16.
가끔 서점에 가면 잡지 코너에 들러 내가 에디터로 일했던 〈월간 인테리어〉를 들쳐 감상에 젖는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첫 사회생활을 디자이너가 아닌, 디자인 매거진 에디터로 시작한 것이 어쩐지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디자인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글과 편집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결국 지금은 디자이너도 편집자도 아니지만, 디자인도 하고 편집도 한다. 디자인과 편집은 사회의 모든 직장인이 하는 일이니까. 모든 직장인들이 문서와 시각 자료를 만든다. 그것이 최종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업무를 진행하려면 꼭 필요한 수단이다.
에디터 출신이라 그런지, 내가 만드는 문서와 자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아 고치고 또 고친다(이런 시각적인 강박증 탓에 정작 중요한 내용을 놓치기도 한다). 결국에는 최소한 만족할 정도로는 고쳐 내는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김은영 〈좋은 문서디자인 기본 원리 29〉
최근 디자인 책을 뜸하게 읽었더니 갈증이 생겨, 시간을 내 서점을 들러 대여섯 권을 와장창 샀다. 그리고 읽은 첫 책이 〈좋은 문서디자인 기본 원리 29〉이다. 평소 관심이 많던 분야라 밑줄을 벅벅 그으며 두 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통독했다. 내가 깊이 고민하지 않고 넘기며 일했던 만족의 ‘기준’이 이 책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여백을 늘 의식하라. 화면에서 읽히는 것은 글과 이미지 같은 개체이지만, 그것이 읽힐 수 있는 이유는 여백이 있기 때문이다.
책은 좋은 문서디자인의 기본 원리를 29개 항목으로 정리해 중학생이 보아도 이해할 정도로 쉽고 명확하게 전한다. 원리가 29개이지만 결국 보이지 않는 ‘여백 디자인’에 관한 내용으로 통한다. 여백을 잘 활용하면 불필요한 정보를 줄이고, 문서에 균형이 잡히고, 빠르게 핵심 내용을 강조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문서를 앞에 두고 했던 일은 정보를 하나씩 빼고 여백을 하나씩 추가하는 과정이었다. 합칠 수 있는 정보는 하나로 간추리고 중요하지 않은 내용은 줄인다. 점, 선, 면, 이미지 중 그 기능이 불명확한 것은 빼고, 기존 요소를 활용해 보충한다. 그리고 필요한 지점에 여백을 더한다.
문서뿐만 아니라, 가구의 배치나 물건의 자리(서랍 속 물건까지)도 잘 디자인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이 책의 위치는 손이 가장 잘 닿는 곳으로 정했다. 곁에 두고 계속해서 읽고 싶은 잘 디자인된 실용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