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2018. 7. 23.

하라 켄야를 떠올리면 ‘욕망’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2년 전 취재 기자 시절, 인더페이퍼갤러리에서 진행된 무카이 슈타로 전시를 취재하던 중, 그의 제자인 하라 켄야의 강연과 대담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당시 밀라노에서 전시 중이었던 <신석기시대, 100개의 행동> 전시를 소개하며, “욕망이 물건을 만들고, 물건이 욕망을 확장한다며, 욕망과 함께 인류의 영리함도 발전하고 잔혹함도 성장한다” 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의 대표 저서인 <디자인의 디자인> 한국어판 10주년 기념판 머리말에도 짧게 소개되었다.


하라 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10주년 특별판 ⓒ안그라픽스


<디자인의 디자인> 초판 역시 ‘욕망’에 관한 글이 있고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었다. 그것은 ‘욕망의 에듀케이션’이란 이름의 장으로, 기업의 디자인과 마케팅의 질은 시장의 욕망 수준을 반영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승적 차원에서 ‘에듀케이션’을 통해 사회의 문화 토양을 비옥하게 할 때 비로소 디자인의 질이 높아지고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기업이 진출하는 시장의 욕망이 얼마나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항상 주시하면서 그에 맞는 전략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의 상품이 인기를 얻기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문제이다. 브랜드는 가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 하는 나라와 그 문화 수준을 반영한다.

「욕망의 에듀케이션」 중에서


하라 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10주년 특별판 ⓒ안그라픽스


다시 전시로 돌아와서, 하라 켄야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모든 사회가 앞으로 나가며 흘리고 간 이삭을 주워서 제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디자인은 수많은 정보로 넘치는 사회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욕망의 에듀케이션’은 수직적 관계에서 욕망의 수준을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변하는 사회를 바짝 뒤좇으며 디자인의 가치를 끊임 없이 환기하는 것이리라. 나는 그의 디자인 작업물보다 사상가,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더 좋아한다. 그는 디자인 전시 기획과 강연, 글 등을  통해 사회적 욕망을 환기하니 말이다.


하라 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10주년 특별판 ⓒ안그라픽스


대담이 끝난뒤 청중의 질문을 받자 10초 정도 골똘히 고민하고, 그래도 생각이 정리가 안 되자 다른 분이 먼저 답하면 그동안 자신의 답변을 준비하겠다던 하라 켄야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책상 위에 두 팔을 괴고 바닥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긴 그의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당장 파탄을 맞을 것 같은 이 세상에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지혜로서 디자인은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 따라서 디자인의 중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혼돈을 가르며 노 저어 앞으로 나아가자」 10주년 기념판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