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15.
짧고 간결한 문체는 82년생 김지영 씨의 삶을 묘사하기 바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200여 쪽에 달하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82년생 김지영 씨가 한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2016년까지 살며 겪은 부조리한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기에도 벅차다.
TV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일했던 조남주는 이 소설에서 ‘방송작가’의 눈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시대에 필요한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의 접점을 찾고 그걸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잘 안다. 그런 점에서 그와 이 소설은 기자 출신의 소설가 장강명과 그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와 서로 닮았다.
작가는 김지영 씨의 감정의 깊은 곳에 가 닿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 다소 차갑게 이야기를 펼친다. 소설의 몰입도를 막는 단조로운 전개가 아쉽다고 느끼는 찰나, 내 생각은 지면을 떠나 현실 속 한국 여성에 관한 기억에 다달았다.
82년생 김지영 표지
인터넷에서 ‘82년생 김지영’을 검색하면 한국 여성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뜬다. [82년생 김지영]이 독자의 공감과 연대를 끌어내는 건 보편적이면서도 부조리한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소설을 읽는 동안 한국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친구, 동료 그리고 가족이 떠올랐다. 육아로 일을 그만둔 누나와 부장님, 어두운 골목길에 원룸을 구하지 못하는 친구, 명절과 제사마다 묵묵히 전을 굽는 어머니, 이 보편적이고 부조리한 풍경.
한국의 남성은 부를 대물림하고 여성은 억울함을 대물림하는 건 아닐까. 여성은 세대를 거듭하며 새로운 형태의 억울함을 안고 산다. 작품 해설을 쓴 여성학자 김고연주의 말을 빌리자면 김지영 씨의 "어머니의 삶이 김지영의 삶보다 더 나은 부분들도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입 밖으로 말할 수 있었으니까." '맘충'이라 불리는 김지영 씨는 여성혐오 속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부를 대물림받는 한국 남자가 점점 더 이기적이고, 억울함을 대물림받는 여성이 점점 더 불안한 건 당연하다. 미친 사람 취급받는 2016년 김지영 씨가 누군가로 빙의해 내뱉는 말은 지극히 정상인 반면, 이기적인 남성들이 대물려 온 지금의 한국이 정상일 리 없는 것도 당연하다.
─
책 속 밑줄(모음)
아무것도 어머니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었고, 온몸과 마음으로 앓고 있는 어머니 곁에는 위로해 줄 가족이 없었다. 어머니는 혼자 병원에 가서 김지영 씨의 여동생을 지웠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이 작지만 묵직하고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딸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넘겨 주었다.
서운함은 냉장고 위나 욕실 선반 위, 두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계속 무심히 내버려두게 되는 먼지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두사람 사이에 쌓여 갔다.
이미 바짝 말라 버석이는 묵은 감정의 먼지들 위로 작은 불씨가 떨어졌다. 가장 젊고 아름답던 시절은 그렇게 허망하게 불타 잿더미가 되었다.
세상에는 혹시 모성애라는 종교가 있는 게 아닐까. 모성애를 믿으십쇼. 천국이 가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