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느세자메 판교 알파돔시티점 / 네임리스 건축, 판교 산책

2016. 10. 16.

지난봄 생활건축사무소 오픈 하우스에 갔을 때 네 소장님과 한국의 아파트에 관해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중 한 명이었으나 기억이 안난다.)은 “한국의 아파트 시장이 무너지면 한국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생활건축사무소 건물이 그 네 소장님의 독립(커리어와 삶 모두에 있어서)과 연관되었던 터라 자연스레 나왔던 얘기였다. 무심코 듣고 흘려버렸는데, 며칠 전 판교에 갔다가 높게 솟은 아파트 단지를 보며 그 말이 문득 떠올랐다.


판교에는 두 번째 오는데 판교를 걸은 건 처음이다. 현대백화점 오픈에 맞추어 판교에 처음 왔을 때는 백화점 내부만 둘러본 뒤 광역버스를 타고 쏙 빠져나왔었다. 아, 그러고 보니 판교를 찾은 적이 한 번 더 있었다. 대학생 때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출간에 맞추어 한국을 찾은 알랭드보통 강연이 NHN사옥에서 열려서 온 적이 있다. 그때도 강연만 들은 뒤 고속버스를 타고 쏙 빠져나왔었다. 이번에는 네임리스건축이 실내 설계를 한 옹느세자메 판교 알파돔시티점에 가느라 판교역 주변을 좀 걸었다.


판교역


판교역과 알파리움타워를 잇는 육교에서 바라본 현대백화점과 푸르지오 아파트 단지


판교 알파리움타워와 멀리 보이는 테크노밸리


판교 테크노밸리 엔씨소프트 R&D센터


판교 알파리움타워 파사드 디테일


판교를 걸으며


미디어를 통해 쌓인 판교에 대한 이미지는 두 가지; 한국의 실리콘밸리와 한국 주택 건축 전시장이었다. IT기업이 밀집한 판교테크노밸리는 생각했던 대로였는데, 주택이 아닌 아파트가 많은 게 내 생각 속 판교와 달랐다. 지도를 펴놓고 봤더니, 주택 단지는 서판교 쪽에 있었다. 판교역 인근은 아파트 단지로 가득했다.


그 아파트 단지를 보고 있자니, 부동산 주택 시장이 강남을 넘어 판교로 이어지며 더욱 몸집을 키우는 느낌이었다. 정말 아파트 시장이 무너지면 한국이 무너지는 걸까? 경제에 무지한 내가 생각하기에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전 국민적으로 재산이 줄어드는 거니까. 그 전 국민에 내가 없을 뿐이고. 하지만 그 타격은 도미노 현상처럼 나를 덮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이 있다.


옹느세자메 판교는 알파돔시티 라스트리트 1동 1층에 있다. 그곳으로 가는 육교를 건너며 멀리 테크노밸리가 보였다. 엔씨소프트 R&D센터 건축물(디엠피건축)의 도시에 열린 풍경이 공원 녹음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육교와 연결된 알파돔시티 1동 건물에 닿았다. 알파돔시티의 외관은 도시를 걷는 나로서는 숨 막히는 답답한 인상인데, 방사형 파사드 디테일은 흥미로웠다.


옹느세자메 판교 알파돔시티점


옹느세자메 판교 알파돔시티점


옹느세자메와 네임리스건축


옹느세자메는 이태원점의 목욕탕 디자인으로 SNS상에서 유명한 걸로 안다. 난 그게 기존에 있던 장소성을 살린 디자인인줄 알았는데, 아이콘TV에 실린, 옹느세자메 이태원점을 설계한 푸하하프렌즈의 인터뷰를 보니 새로 만든 거더라. 아무튼 그곳이 더 잘 알려져 있는데, 거긴 가보지 못해서 옹느세자메의 커피와 디저트를 맛본 건 판교점이 처음이다.


오직 네임리스건축 때문에 온 것이다. 삼각학교의 설계를 보고 네임리스건축에 매료되었고,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네임리스건축 강연을 들으며 팬이 되었다. 그들의 건축은 일반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역설적인 풍경과 감각을 일깨워, 신선한 건축적 경험을 이끈다. 소규모 실내건축 작품이지만, 옹느세자메 판교 알파돔시티점도 그렇다. 오히려 이런 소규모 작업이 건축적인 실험을 하기엔 더욱 자유로웠을 것 같다.


옹느세자메 판교 알파돔시티점 내부


옹느세자메 판교 알파돔시티점 내부


옹느세자메 판교 알파돔시티점 케이크 진열대


옹느세자메 판교 알파돔시티점 이탈리안 티라미수와 아메리카노


“패브릭은 평면적인 재료이다. 흔히 옷, 침구 등 인간의 신체와 맞닿는 사물의 유연한 표피로 사용된다. 우리는 이 재료를 평면에서 입체로 변화시켜 직물이 갖는 이차원의 특성을 삼차원의 관점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는 자르고, 접고, 꿰매는 천의 일반적인 사용방식이 아닌 패브릭의 얇은 단면을 쌓아 적층시키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네임리스건축 노트


가벼운 물성을 지닌 재료를 무거워 보이도록 하는 실험은 지난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설치했던 EPS Grotto에서도 했었다. 이번엔 천으로 그 실험을 이으며 실용적인 공간에 적용한 것.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다른 블로거들의 포스팅에서 푹신할 줄 알고 앉았더니 딱딱해서 불편했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직접 앉아보니 그런 불편함은 없었다. 천을 접착해서 가구로서 기능을 충족하지 못해서 목재로 구조를 짜고 그 위에 천을 덧씌운 것이라 한다. 시각적으로 무거워 보이는 가구들이 평면을 명확히 구분 지으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이 편안하게 앉아 있기에 좋았다. 천장에는 바람에 나풀거리는 가벼운 천 한 장씩 내걸려 있어서 바닥에 깔린 가구의 무거운 느낌이 더욱 극명하다. 천장에 걸린 천은 레일을 따라 움직일 수 있어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옹느세자메 판교 알파돔시티점 천장에 매달린 가벼운 천


옹느세자메 판교 알파돔시티점 천으로 만든 가구들


프랑스어로 아무도 모른다라는 옹느세자메(On ne sait jamais)의 네이밍처럼, 앞으로 만들어질 옹느세자메의 공간이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 기대된다. 네임리스건축의 독보적이고 실험적인 작업도 꾸준하게 관심 갖고 지켜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