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임리스 건축 오픈 토크 리뷰 / 금호미술관 OUT OF THE BOX

2015. 11. 8.

저는 이름이 없는 것에 대해 묘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을 기억할 때 이름이 없으면 경험했을 때의 분위기를 입체적으로 떠올리게 됩니다. 이름이 또렷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 표정과 말투 함께 했던 시간의 분위기로만 기억되는 친구가 있을 겁니다. 이름을 말해버리는 순간 입체적이던 그런 기억들이 한꺼번에 이름에 매몰되어 버리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름 없는 건축가가 있습니다. 이름이 없다기보다, 이름이 '이름 없음'입니다. 바로 나은중, 유소래 소장님이 이끌고 있는 네임리스 건축(NAMELESS ARCHITECTURE)입니다.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건축 전시 'OUT OF THE BOX 재료의 건축, 건축의 재료'에 참여한 네임리스 건축이 지난 토요일에는 금호미술관에서 건축가 오픈 토크를 진행했습니다. OUT OF THE BOX가 '재료'를 주제로 한 전시인 만큼 네임리스 건축의 오픈 토크 또한 'Material-Play'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진행해온 프로젝트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물, 식물, 공기, 돌, 플라스틱, 유리, 콘크리트를 키워드로, 그 재료를 사용한 대표적인 작품들이 소개되었습니다.


네임리스 건축은 서울과 뉴욕에 기반을 둔 아이디어 기반의 설계사무소이다. 2009년 뉴욕에서 네임리스 건축(NAMELESS Architecture)을 개소한 후 서울로 사무실을 확장하였으며, 불예측성의 시대에 단순함의 구축을 통해 이 시대의 건축과 도시 그리고 문화적 사회현상을 탐구하고 있다. 일상에서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주거, 문화, 교육, 종교 시설등의 구축을 통해 단단한 건축의 유형을 만들고 있으며 동시에 공공예술, 전시, 설치작업을 통해 건축의 유동성을 실험하고 있다. 네임리스건축 홈페이지


0 네임리스라는 이름

나은중 소장님은 자신을 소개하며 네임리스라는 건축 사무소의 네이밍에 대한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네임리스라는 이름은 사실 이름 짓기 어려워서 지은 것인데 모호한 정체성이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름에 대해 어떤 사람은 심오한 뜻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어떤 어르신은 건축가라면 자신의 이름 석자를 걸고 해야 한다고 다그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름인 만큼, 자신들의 작품 또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금호미술관 건축가 오픈 토크 네임리스 건축 나은중 소장님.


1 WATER│Whiteout 화이트아웃, 2011

물을 재료로 사용한 화이트아웃은 캐나다 위니펙(Winnipeg, Canada)에 있는 강 위에 쉘터를 만드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곳은 일 년 중 절반 가량 강이 얼어 있을 정도로 추운 곳이라고 합니다. 언 강은 도시의 기반 시설로 작동해 사람들이 출퇴근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네임리스 건축은 이 장소에서 끌어올 수 있는 재료를 고민하다가 강물로 마치 하나의 이글루와 같은 공간을 만들기로 했고, 물을 고무호스에 담고 얼려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구조로 활용되도록, 강이 폐쇄될 때는 구조물이었던 물이 자연스럽게 녹아서 강물로 환원되고 고무호스는 창고에 보관되었다가 다음 해에 맞춰 설치되는 방식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Nameless Architecture, Whiteout, 2011


Nameless Architecture, Whiteout, 2011


2 AIR│Playcloud 놀이구름, 2010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건축의 구조적인 논리를 중력 반대방향으로 작동시키는 생각이었습니다."


공기를 재료로 사용한 '플레이클라우드, 놀이구름'은 뉴욕 맨해튼의 남쪽 섬 거버넌스 아일랜드에서 2007년 열린 축제에 제안된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2007년 이전에는 군사적인 이유로 대중에게 섬이 개방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가까이 있는 섬이지만 알려지지 않고 멀게 느껴졌던 이곳의 시간성과 장소성을 반영해서 하늘 위로 높게 띄운 상징적인 구조물을 계획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건축에서 기둥이 지붕을 지탱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플레이클라우드는 헬륨으로 가득 차 하늘로 오르려는 상부 구조를 실타래들이 붙잡고 있는 구조입니다. 실타래를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과 자연환경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작품입니다.


Nameless Architecture, Playcloud, 2010


3 PLANT│In The Air 공기중에서, 2014

물, 공기. 일반적으로 건축에서 사용하기 힘들 것 같은 재료들을 소개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식물을 재료로 사용한 프로젝트도 소개했습니다.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젊은건축가프로그램에 제안한 파빌리온 '인디에어, 공중에서'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달라"는 간단한 프로젝트였다고 합니다. 네임리스 건축은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고자 했고, 가장 좋은 그늘은 빛이 투과되고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크레인으로 나무를 옮기는 사진 한 장에 영감을 받아 나무가 공중에 띄우는 제안했고, 이와 함께 사람들의 다양한 놀이가 가능한 그네와 같은 시설을 통해 사람들도 공중에 뜨도록 해 중력을 거스르는 행위로 가득한 파빌리온이었습니다.


Nameless Architecture, In The Air, 2014


Nameless Architecture, In The Air, 2014


4 STONE│EPS Grotto EPS동굴, 2013

재작년 시청 앞 광장에 설치되었던 EPS동굴은 벽(기둥), 지붕의 건축의 기본 요소로 만들어진 구조물인 고인돌과 같이 기본 요소로만 만들어진 구조물입니다. 네임리스 건축은 1주일이라는 일시적인 기간 동안에 전시된다는 것을 감안해 실제 돌이 아닌, 돌처럼 느껴지는 텍스쳐의 가벼운 EPS블록 스티로폼으로 파빌리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EPS블록을 쌓고 기둥과 지붕을 스틸파이프와 연결 클립으로 고정했으며 이광호 작가와 협업해 EPS블록 표면을 특수 제작한 열선으로 깎으며 돌의 텍스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사회 정치적 행위가 일어나는 서울시청 앞 광장의 맥락 속에서 1주일 동안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흥미로운 프로젝트였다고 합니다.


Nameless Architecture, EPS Grotto, 2013


5 PLASTIC│The Door, 2014

The Door는 아름지기재단에서 건축가의 문이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에 설치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문입니다. 네임리스 건축은 목재로 틀을 만들고 종이로 덮은 동아시아의 전통 문이 안과 밖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철제문으로 대표되는 현대 건축의 문은 안과 밖을 완전히 단절시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문이라는 것은 건물의 입면 파사드와는 달리 실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실체"라는 흥미로운 요소라고 합니다. 건축가의 문을 의뢰받고 전통 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로 했고, 안과 밖을 느슨하게 만드는 현대적인 재료로 실리콘 막과 플라스틱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또한, 재료가 달라졌으니, 만드는 방식도 전통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틀을 짜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반투명 에폭시로 만든 틀에 녹인 플라스틱을 부어 특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전통 문의 창호는 손 끝에 침을 발라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등 적극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그러한 점은 실리콘 막의 탄성으로 재해석된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Nameless Architecture, The Door, 2014


Nameless Architecture, The Door, 2014


6 GLASS│무거움과 가벼움 사이, 2015


"실제로 저희들은 이 목업을 만들면서 재료의 실험이 단순히 전시를 위한 장치를 넘어서 실제 건축에서 구현 가능한 실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성품이 아닌, 실제 유리 벽돌을 제작을 하게 됐습니다."


금호미술관에 한창 전시를 하고 있는 무거움과 가벼움사이로 유리라는 재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유리로 벽돌을 만드는 것을 실험한 것인데, 사실 유리 벽돌이나 흙벽돌은 외관상 가볍고 무거운 상반된 모습을 보이지만, 유리또 한 흙을 재료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유리 역시 규소와 석회석을 고온에서 녹여, 흙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한편, 시각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유리 벽돌이 실제로는 흙벽돌보다 1.8배가량 더 무겁다고 합니다. 흙벽돌과 유리 벽돌은 아이러니로 가득한 관계입니다. 이러한 실험의 결과물이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라는 그라데이션의 벽으로 표현되었고, 앞으로 유리 벽돌을 실제 건축에 사용해 볼 예정이라고 합니다.  


Nameless Architecture,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 2015


7-1 CONCRETE│RW Concrete Church 록원교회, 2013

콘크리트가 소개된 마지막 장에서는 두개의 건축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록원교회와 동화 삼각학교입니다. 신도시에 만든 종교시설인 록원교회는 설계할 당시 황무지였다고 합니다. 전혀 콘텍스트가 없는 상황에서 네임리스 건축은 최소한의 재료로 상징적이고 담백한 건축으로 단순함을 구축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포인트를 준 부분은 3층 예배당으로 오르는 계단실에 창이 없고,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홀에 십자가 프레임의 큰 창을 내 도시의 모습을 극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풍경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아주 일상적인 도시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주위에 CGV와 같은 시설물이 들어섰고, 교회 건물에 첨탑도 올려져 복잡해졌다고 하는데, 애초에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최소한의 재료인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이라 합니다.


Nameless Architecture, RW Concrete Church, 2013


Nameless Architecture, RW Concrete Church, 2013


Nameless Architecture, RW Concrete Church, 2013


7-2 CONCRETE│DH Triangle School 동화 삼각학교, 2015

프로젝트를 설명하기 앞서 나은중 소장님은 1970년도에 만들어진 표준화 학교 도면을 보여줬습니다. 이 표준화 도면은 지역과 시간을 초월하는 획일화된 학교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소장님이 경험했던 학교와 아버지가 경험했던 학교 그리고 지금 학생들이 경험하는 학교가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유일한 공용 공간은 복도이며 1자형 복도 공관이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최근 다양한 평면이 만들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ㄷ'자나 'ㄱ'자로 꺾일 뿐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 동화 삼각학교입니다.


"설계하면서 실제로 학생들이 정말 시끄럽게 뛰어 놀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실제 가보면 축구도 하고, 사이 틈으로 배트민턴도 하고 난리도 아닙니다. 가장 기쁠 때가 내가 예상했던 지점보다 행위들이 활성활 될 때 기쁨이 있습니다.. 거실이라는 공간이 교육 시설에서 부재했던 거죠. 삼각학교에서는 삼각형을 감싸는 복도이자 거실과 같은 공간이 노출되었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동화 삼각학교는 6.25 시절에 지어진 농업학교로 시작해 긴 역사를 갖고 있고, 한 학년에 500명 정도가 다니는 대규모 고등학교로서 학년별로 건물을 따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각 건물의 배치는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대지경계의 끝을 따라 맥락 없이 지어졌다고 하며, 그중 3학년 건물은 안전상 철거판정을 받아 신축을 하게 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교육부가 주관해 1자형 계획안을 받았는데, 삼각학교 내부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네임리스 건축에 의뢰했다고 합니다.

건물이 들어설 장소는 뒷산, 운동장 그리고 이웃한 중학교 건물을 삼면으로 마주한 곳이었습니다. 그 면을 따라 삼각형으로 덩어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중학교 건물과 마주한 부분은 차단해 달라고 학교 측의 요구가 있었다고 하고 운동장으로는 유리로 개방하는 입면을 계획했다고 합니다. 운동장에 면한 유리 마감은 소음을 줄이고, 빛 반사가 심하다는 민원에 따라 빛 반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스틸루버가 50㎝ 정도 튀어 나오도록 설치했다고 합니다. 내부에는 외부 삼각형과 10도 정도 뒤틀린 삼각형을 넣어 중정을 만들고, 10도의 틈 사이로 2, 3층이 열려있는 구조로 계획되었습니다. 중정은 삼 면이 유리로 마감되어 안과 밖에서 서로 바라볼 수 있도록 되었는데, 이는 기존 학교 건물이 갖고 있던 판옵티콘의 감시 구조를 탈피한 장치라고 합니다.


Nameless Architecture, DH Triangle School, 2015


Nameless Architecture, DH Triangle School, 2015


Nameless Architecture, DH Triangle School, 2015


강의 들었던 것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엄청 흘렀네요. 강의도, 강의를 정리하는 시간도 네임리스 건축과 건축관을 알아가는 과정이어서 즐거웠습니다. 정리하다 보니, 중력이나 재료의 본성,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을 거스르는 작업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색다름을 느끼도록 이끌어 내는데 적극적인 것 같습니다. 삼각학교를 보니, 일시적인 설치물 외에 실제 건축 작품에서도 그런 모습을 조금씩 반영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네임리스 건축이 건축가로서의 사회적 역할에도 충실하다고 느껴집니다. 록원 교회도 그렇고 삼각학도 그렇고, 매번 작품을 발표할 때 비현실적인 듯한 비주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데, 다음 깜짝 놀라게 할 프로젝트는 무엇일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