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라멘집 멘야 히가시

2016. 5. 1.

고향에 갔다가 서울에 도착하니 '아 마침내 집에 도착했구나, 고생했네', 싶었다. 배가 고파서 서울역에서 끼니를 때울까 하다가, '기왕 조금 더 참고 집 근처에서 맛있는 걸 먹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얼마 전 새로 문을 연(아마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듯) 라멘집인 멘야 히가시에가서 차슈를 추가한 라멘을 먹기로 마음먹었다.

 

고향 얘기를 조금 덧붙이자면

 

지난겨울 결혼한 누나의 신혼집 아파트에서 저녁을 함께 먹고 아버지와 함께 잠을 잤다. 일찍 잠이 들지 못하고, 근 3년 만에 자신의 세계를 가시적으로 완성한 누나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뭔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인생을 완성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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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선 조금 이해되지 않는 게 많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맛있는 음식점이 없는, 그래서 자동차가 꼭 있어야 하는 신도시에 거액을 들여서 방이 셋 있는, 그래서 둘이 살기엔 너무 넓은, 창 밖으로는 건너편 아파트가 보이는, 14층 높이에 아파트를 사고 그곳에서 인생을 완성하다니.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누나의 완성된 행복에 찬물을 끼얹는 '못돼먹은' 동생의 의견일 뿐. 나는 그저 할수 있는 한 행복하게 웃어 보였다.

 

아무튼 누나의 그 모습을 흡족하게 생각(한 듯)하고 깊은 잠이 든 아버지 옆에 누워 있으니, 가족 중에서 나만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피가 섞인 탓에 간신히 인연이 닿아 있을 뿐 가족과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아 마침내 집에 도착했구나, 고생했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거다.

 

독특할 게 없는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 딱히 고향 특유의 풍경이랄 것이 없다. 고향은 피가 섞인 가족이 사는, 그냥 서울보다, 대구보다 작은 '도시'일 뿐이다. 고향의 맛이랄 것 또한 없다. 맞벌이 가정에서 자란 나에게 집밥이란 흰 쌀밥에 간장과 참기름, 반숙 계란후라이를 비빈, 지금 나도 당장 3분 만에 만들 수 있는 계란밥이었다(또는 찬물에 말은 흰 쌀밥과 고등어 반찬의 조합).

 

대구에서 대학에 다닐 때 원룸 근처에 자주 가는 텐고쿠라는 라멘집이 있었다. 얼마나 맛있던지, 대구에 가면 꼭 시간 내서 들르고 싶은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그렇게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 적은 없지만). 독립하고서 부모님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걸 서서히 깨달으며 고향은 내 마음의 집에서 점점 멀어졌다.

 

마치 이런 것 같다. 첫 배낭여행 간 뉴욕에 갔을 때 외롭고 무서운 밤 고향에도 있고 인테리어 마감재도 비슷했던 스타벅스를 가면 마음이 편안했던 것. 고향에 다녀오고 자취방으로 가는 길에 먹는 라멘에는 내게 '고향의 맛'이랄까, 안도감이랄까, 그런 정서가 있다.

 

연남동 멘야 히가시

 

다시 서울 얘기. 내가 서울에서 2년 가까이 사는 연남동에는 내세울 만한 라멘집이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라멘이 없다니, 뭔가 내 동네라기에 2% 부족했다(라는 걸 멘야 히가시가 생기고 나서 깨달았다). 

 

연남동 멘야 히가시

 

홍대입구역부터 연남동 골목까지 수많은 인파에 치여서 피곤했는데, 멘야 히가시에 도착하니, 아직 잘 안 알려졌기 때문인지 혼자였다. 그래서 여유롭고 조용해서 좋더라. 예정대로 히가시라멘에 차슈를 추가해서 배부르게 먹었다.

 
닌니쿠 라멘, 기본 돈코츠에 마늘향이 추가된 라멘.

 

히가시라멘,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멘야히가시의 돈코츠 라멘. 차슈를 추가했다.

 

츠카멘, 어페류향이 첨가된 스프에 통통한 면을 찍어먹는 라멘.

 

연남동의 다른 식당이 그랬듯, 이곳도 곧 많이 알려져서 먹고 싶을 때 가더라도 자리가 없어서 못 먹게 될 것 같다(분명 내 블로그 때문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의 영향일테지, 그래서 이렇게 대담하게 블로그에 적는 것). 그 전에 자주 가서 마음껏 먹어 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