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5.
누나가 곧 결혼을 합니다. 지난 추석에는 매형이 고기와 술을 한아름 들고 찾아와 온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낮부터 꽤 많은 술을 마셨습니다. 다들 "이제 술은 그만 먹겠다"며 자리를 떠났는데도 아버지는 혼자서 계속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한껏 취해서는 "이제 장인어른이 되니 진짜 어른이 된다"라며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제게 아버지는 의심의 여지 없는 어른입니다. 그런 아버지가 이제야 어른이 된다고 하니, 정말 '어른이 된다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일 년 전 우연히 글을 쓰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 사회에서의 일 년 동안은 학생 때 서 있던 땅과 확연히 다른 온도에 적응하느라 바빴습니다. 아마추어의 몸을 한 자신을 순간마다 마주하며 좌절했던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정말 많더군요. 지금 제 기준에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어른의 문장은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지면 위에 꼿꼿이 서 있습니다. 저는 그 그늘에서 힘없이 쓰러지는 문장들을 부여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민음사 2015
요시모토 바나나의 수필집 <어른이 된다는 건>은 하룻밤에 다 읽을 만큼 가벼운 책입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장에서 무엇을 기대했는진 모르겠지만 처음엔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밤에 두 번, 세 번 다시 읽으니, 처음에 헤아리지 못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깊은 생각이 제 마음에 와 닿아 따듯한 공감을 일으켰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히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처럼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에서, 친구 관계에서, 죽음 앞에서, 또, 삶에 놓이는 많은 상황에 저마다의 '어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장인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부탁은 단순히 어른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독자를 위로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우리 삶의 성숙한 자아가, 어른이 된 결과가 아닌,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에 존재한다는 것을 100여 페이지에 걸쳐 꾸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글로서 뛰어난 사람이 되지 못하고 끝내 이 방면에서 어른이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오늘처럼 어른이 되기 위한 생각으로 잠을 설치는 생생한 밤이 있는한 제 삶이 초라할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러니 어른이 되기 위해 더욱 힘을 내야 겠습니다. 아버지, 저는 지난 상견례 자리에서 긴장한 아버지의 표정과 떨리는 음성을 기억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도 마주해야할 어른이 되는 순간이겠지요? 또 한 번 멋진 어른이 되시는 것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