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8.
최근의 저녁 생활 패턴은 이렇다. 퇴근 후 간단한 요리를 한다. (요즘에는 <맛있다, 밥> 요리 책을 보며 레시피를 따라 하는데 소스는 책에서 소개하는 양의 절반만 하면 된다. 전체적으로 달고 짜다.) 밥을 먹고 내일 아침과 저녁 요기 그리고 생필품 등 이것저것 장을 본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깐 인터넷을 한다. 그러다 보면 밤 10시. 간접조명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침대에 누워 악스트를 읽는다. 향초를 키면 금상첨화. 밤 늦게 글을 적는 오늘은 이 패턴에서 예외로 한다.
맛있는 요리가 있는 저녁이 그렇듯,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 밤은 행복하다. 사실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물과 사건에 도통 집중하지 못하겠더라. 종이가 한 장만 넘어가도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잡념에 빠졌다. 그동안 읽은 소설은 <소나기>와 <동백꽃> (입시 때문이었지만 분명 재밌었다.), 시도했다가 실패한 소설은 <봉순이 언니> (MBC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TV프로그램을 보고, 책을 읽지 않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시도한 책.)와 그 유명한 <엄마를 부탁해> (너무나 유명해서 안 읽으면 시대에 뒤처지는 느낌이었다.)가 고작인 걸 보면 내가 얼마나 문학과 먼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거다.
그런 내가 소설을 다 읽는다. 지난 달 우연히 집어든 요시모토 바나나의 단편 소설이 시작이었다. 가볍고 세련된 문체, 특히 첫 문장의 긴장의 끈이 마지막 장까지 이어지는 것은 대단했다. 그리고 SNS를 통해 알게된 악스트 창간호를 기꺼이 샀다. 책을 사고 매일 밤 읽진 않았지만, 집에 악스트가 있다는 것에, 기다려지는 이야기가 침대 맡에 있다는 것에 하루하루가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악스트는 아우트로 Outro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는 자기 안의 고독을 일깨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라고 말한다. 또, "우리가 들고 있는 도끼가 가장 먼저 쪼갤 것은 문학이 지루하다는 편견이다."라고 말한다. 악스트가 겨냥한 독자층의 중심에 내가 있지 않았을까. 그들이 기획한대로 악스트는 내 안의 고독을 일깨웠고 문학이 지루하다는 편견을 쪼갰다.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관에서 구축된 이야기로 승부하는 소설가의 문장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던 싱싱한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그동안 문학을 멀리 하며 내 삶이 얼어붙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면, 이제 악스트라는 도끼를 들고 삶의 주인이 되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