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30.
군복무 2년 동안 정말 많은 디자인 서적을 탐독했습니다. 그렇다고 책 내용을 다 이해한 것도 아닙니다. 꽤 많은 책이 절반도 읽기 전에 책장에서 나올줄 몰랐으니까요. 그 대표적인 책이 디앤디파트먼트(이하 디앤디)의 이야기를 담은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였습니다. 디앤디 대표인 나가오카 겐메이씨가 쓴 책이었죠. 일기 형식으로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를 400페이지 가까이 (정말)진지하게 적어갔으니 도저히 책장을 넘길 수 없었습니다. 오기로 절반 정도는 읽었던 것같은데요, 막 디자인에 입문해 바우하우스도 모르던 당시의 나로써 충분히 그럴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읽은 디앤디파트먼트에서 배운다는 디앤디의 요점만 짚어 정리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아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디앤디는 장사라기 보다 운동에 가깝습니다.
버려진 '롱라이프디자인' 제품을 '구조'해 상품성을 높여 필요한 고객에게 판매하는 중고숍입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쉽게 버려지는 디자인에 대한 비판이자 구체적인 행동인 것입니다. 디앤디는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가 전개하는 프로젝트로 2000년 도쿄 오쿠사와에 1호점, 2002년 오사카 미나미호리에에 2호점을 오픈했습니다. 그 뒤로 지역에 뿌리내리는 디자인 활동을 넓혀나가기 위해, 일본 내 47개 도도부현에 한 곳씩 현지의 파트너와 함께 거점을 만드는 계획을 시작했습니다. 2013년 11월에는 디앤디 서울점이 해외에선 처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디앤디는 제대로된 수익이 나지 않는 중고 디자인 숍입니다.
그래서 지역의 디자이너또는 디앤디 철학가과 부합하는 누군가가 운영합니다. 본 수입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서울은 국내에 프라이탁 가방을 최초로 들여온 것으로 유명한 편집매장 겸 카페 겸 디자인회사 mmmg가 서울점을 운영합니다. 디앤디는 지역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카페를 꼭 함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정기적인 공부회를 갖습니다. (그러고보니 서울점은 카페가 없군요?? 있나요?) 그리고 각 지역의 디자인 여행 이야기를 담은 d travel 책을 발간합니다. 또 'd 친구들' 이라는 형식을 만들어 디앤디를 운영하지 않더라도 디앤디의 정신과 부합하는 브랜드를 엮습니다. 지금껏 구절구절 이야기 한 것이 디앤디입니다.
책을 통해 디앤디가 좀 더 가까워 진것같습니다.
'고객이 아닌 지역을 위해 디자인 한다' 라는 문구가 디앤디를 잘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용자 중심 디자인은 많은 문제를 낳은 것같습니다. 고객에게 좋다고 해서 지역사회나 지구환경에 좋은 것은 아니니까요. 디앤디는 대중과 함께 지역과 지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뭔가 찝찝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분명 좋은 비즈니스이자 운동이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거대한 유행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합니다. 실제로 디앤디 서울점에서 딱히 살 물건이 없습니다. 그냥 묘하게 세련됐다는 분위기에 압도당할 뿐입니다. 주위에 디앤디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은 정작 트렌드세터고 심지어는 디앤디 스티커도 때지 않고 사용하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것이 과연 롱라이프인 것일까요? 롱라이프디자인이라서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소비하는 주기가 짧아진 탓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물건이 아니라 그 주기에 문제인식을 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역의 롱라이프 디자인을 소개하는 것까진 좋지만 그것을 해야할 역할은 박물관이 어야 할 것같기도 하구요. (물론, 일본엔 실제로 d 박물관이 있지만요..)
사진 d-department.com
이런 의구심은 분명 디앤디에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에서 디앤디 운영자와 나가오카 겐메이씨는 끊임없이 디앤디의 방향에 대해 불확실해 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문장은 "부디 디앤디에서 물건을 사주십시오."로 마치니.. 잘 모르겠군요. 디앤디 서울이 가까우니 자주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공부회도 가보려고 합니다. (자세한 일정은 디앤디 서울 블로그 수시로 참고) 그래서 진짜 디앤디를 경험해 봐야겠습니다. 단순히 책에서 전해지지 않는 어떤 뜨거움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 후에 정말 제대로된 비판이나 옹호를 할 수 있겠죠. 부디 크리에이티브라는 세련된 분위기에 편승된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말 지역의 디자인과 상품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