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0.
건설이 건축을 대체하다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 리뷰 : 한국 건축에 새롭게 바라기
작년 여름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강타하고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 뿐이었나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이 축구종가인 영국 대표팀을 상대로 승리하며 동메달을 땄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건축은 상대적으로 더 초라해 보였다. 음악, 영화, 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반해 건축은 이렇다 할 결과는커녕 내·외부의 질타뿐이었다. 건축을 공부하는 나는 한국 건축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는 한국 건축의 실태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진단해낸 책이다. 저자 이상헌은 제목처럼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 말은 한국 건축의 문제점이 ‘건축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에도 5년제 건축교육이 자리 잡혀가는데 건축이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저자는 한국에서 건축이 서양과 비교해 어떻게 인식되는지 짚은 다음 행정적, 학문적, 사회적 위상을 분석해 건축문화가 제도화되지 않았음을 논리적으로 밝혔다. 한국은 문호가 개방된 후 빠르게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건축보다 건설이 우위에 있게 됐다. 이는 기술보다 예술, 기술, 인문, 사회, 과학을 포괄하는 서양과는 대조적이다. 건설이 건축을 대체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국가제도, 행정 조직, 교육이 건설중심으로 편성되었다. 그가 말한 대로 대한민국에 건축은 없었다.
답답할 따름이다. 건축이 없는데 그것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갈까? 역설적이게도 저자는 “대한민국에 건축은 있다”고 말하며 나름의 방식이 존재하는 한국 건축의 미래에 대한 담론을 이끌었다. 그 중 ‘한국건축에 뿌리내린 개인주의’가 눈에 띄었다. 공유된 건축 규범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한국 근대건축은 개인적 표현주의에 그쳤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나뿐이 아니겠지만, 한국 건축계에서 싸이나 김기덕과 같은 스타를 꿈꾸고 요구해 왔는지 모른다. 그런 스타가 나타나면 한순간에 한국 건축의 위상이 높아지고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환상을 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축은 건축가 개인의 작품성에 앞서 공유된 규범으로 자리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프리츠커상이나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이 어느 국가의, 어느 건축가에게 갈지에 대해 떠드는 것보다 한국 건축의 정체성에 관해 관심 갖는 것이 먼저가 아닐지 반성하게 된다.
어쩌면 한국 건축은 다시 원점이다. 한국 건축에 스타를 바랬던 것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