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산에 오피스텔을 빌려 3개월째 지내고 있다. 주로 주말 위주로 머무는데, 아침마다 8시에 오픈런을 하는 카페가 생겼다. 유틸리티 커피 로스터스다. 오피스텔에서 그곳까지 가는 길은 썩 좋지 않다. 용산역과 드래곤시티호텔, 그리고 용산전자상가 뒷골목을 지나 30분 정도 걸어야 도착한다. 하지만 이곳을 처음 방문한 뒤로 커피 맛에 반해, 불편한 길마저 산책로 삼아 아침 8시 오픈시간이면 들르게 되었다.
무엇보다 유틸리티 커피 로스터스는 커피가 맛있다. 그동안 커피 맛을 잘 몰라서인지 신맛이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방문했을 때 사장님이 최애 원두로 추천해 주신 에티오피아 구지 함벨라 고로를 한 입 마시자 향부터 첫 맛, 그리고 잔향까지 입안 가득 다채롭게 펼쳐지는 커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맛있었지만, 방문을 거듭할수록 사장님이 커피를 대하는 태도에 점점 매료되었다.
한편 이곳은 커피만 맛있다. 커피 맛을 제외하면 이용하기 불편할 정도다. 그러나 이 역설적인 불편함이 오히려 커피 맛에 집중하게 만든다. 제대로 된 테이블 하나 없고, 벤치 아래 페인트통 같은 원통 위에 커피를 올려 주신다. 커피는 언제나 흘러넘칠 듯 가득 차 있다. 한 모금 마시려면 허리를 숙이고 잔을 조심스레 들어야 한다. 그리고 입앞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향을 들이마신 뒤 다음 숨에 커피를 마신다.
나는 궁금했다. 왜 굳이 잔이 넘치도록 커피를 담아 주실까? 사장님께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손님이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마치 바텐더가 위스키를 마티니 글라스에 넘치도록 채워 내놓는 것처럼, 커피 향과 맛을 온전히 느끼게 하기 위한 연출이었다. 커피 맛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과감한 선택이다. 사장님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커피를 즐겼다. 하지만 나는 과연 한 잔의 커피 맛을 온전히 느끼며 마신 적이 있었던가? 묻게 된다. 그 답은 ‘아니오’였다. 유틸리티 커피 로스터스는 세련된 방식으로 한 잔의 커피를 깊이 즐기는 법을 알려준 곳이다. 스스로 그 맛을 깨닫게 한다는 점이 유틸리티 커피 로스터스만의 특별한 점이다. 이곳을 추천해준 원진 씨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유틸리티 커피 로스터스를 추천합니다. 유틸리티 커피 로스터스가 더 멀리 퍼져 나가길 바라며.
이곳의 파키라, 처음 방문했을 때 네 번째 잎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다섯 번째 잎이 활짝 폈다. 자리가 마음에 드나 보다. 원두뿐만 아니라 핸드드립백을 패키지로 판매한다. 한동안 방문이 어려울 땐 미리 핸드드립백을 사 놓는다. (원두 구매 링크)
지난 여름동안 수 잔을 아이스로만 마시다가, 시원해진 가을 아침 날씨에 처음으로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아이스든 핫이든 맛있다. 시즌별로 원두도 달라지나보다. 매번 마시던 에티오피아 구지 함벨라 고로는 메뉴에서 사라져서 새로운 원두를 추천 받았다.
테이크아웃잔에 원두 이름을 적어서 주신다. 같은 원두라도 필체가 조금씩 다르니, 결국 한 잔 한 잔, 다 다른 잔에 담기는 셈이다. 로스팅 날짜, 그날의 날씨, 나의 기분에 따라 원두 맛이 조금씩 다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