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8.
요즘 클래식 피아노 음악을 자주 듣게 되었다. 아내가 피아노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글렌 굴드의 연주를 즐겨 듣는다. 그의 연주는 꾸밈이나 가식 없이 음악 그 자체를 전달하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의 연주를 감상할 때면 감정을 풍부하게 실어 연주하는 다른 피아니스트와는 달리 감정 소모가 적고 순수하게 음악에 집중할 수 있다. 클래식의 키읔 자도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감상평은 이 정도가 다다. 나의 감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글렌 굴드가 왜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이 높은 지 챗GPT에 물어 보았다. 그 답변은 이렇다. “굴렌 굴드는 낭만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 구조적이고 지성적인 접근으로 곡을 해석했고 성부의 독립성을 극대화해 관객이 대위법적 구조를 명확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세스 고딘의 <린치핀>에는 ‘클래식 음악가들은 예술가인가’라는 흥미로운 주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라고 하면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쉽게 떠올리지만, 책에서의 ‘예술가’는 다르게 정의된다. 세스 고딘은 예술가란 자신의 독창성과 감정 노동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타인과 깊은 연결을 형성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가는 점점 획일화되는 사회 속에서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창출한다. 책의 정의에 따르면, 바흐의 악보를 그대로 연주하는 평범한 피아니스트는 어디에나 있는 노동자인 반면, 글렌 굴드처럼 독창적인 해석으로 바흐 음악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고, 감상자들에게 새로운 감상의 지평을 여는 피아니스트는 진정한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두 가지 상충하는 감정이 들었다. 하나는 내가 하는 개인 사업이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술’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다는 점이다. 개인 사업이라는 현실과 예술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며 수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만난 이 책의 메시지는 나의 마음을 매우 불편하게 했다. 현재의 개인 사업은 전략적으로 정답이 정해진 길을 따라가고 있다. 1인 기업 운영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상품 판매 가격을 낮추어 경쟁에서 이기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을 꿈꾸는 이유는 단순하다. 예술에는 진정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깊은 고민이 담긴 제품이나 서비스, 나를 위해 준비된 특별한 경험을 할 때면 마음 깊이 감동을 받는다.
특히 책에서 강조된 ‘감정 노동’이라는 키워드가 나의 눈에 띄었다. 감정 노동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인간적 연결을 만들어 내는 일로, 린치핀의 가치를 창출하는 예술적 핵심 역량이다. 내가 개인 사업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든 일은 상담하는 일, 즉 감정 노동이다. 고객 상담을 하다 보면 터무니 없이 상식 밖의 요구를 하는 고객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런 경우 나는 당황하고 화나고 상처 받는다. 스스로 그런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나만의 ‘예술’을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심 어린 선물을 건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런 순간에 느끼는 감정적 연결이 바로 ‘예술’이며, 이는 나만의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된다.
<린치핀>을 읽고 깨달은 것은 예술은 어디에서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나의 사업이 기존 전략을 따라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창의적으로 생각한다면 고객과의 감정적 연결 지점, 즉 ‘터치 포인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고객은 어떤 상품을 찾고 있는지,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상품을 소개할지, 가격을 얼마로 측정할지, 고객에게 어떤 혜택을 줄지, 상담 과정에서 어떤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지 등 작은 부분에서도 충분히 예술을 실현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예술을 열망한다고 했지만, 그동안 ‘예술’을 받는 소비자에 머물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나만의 가치를 담아 예술을 창조하고 싶다. 타인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는 ‘린치핀’이 되어 나의 사업과 삶에서 대체할 수 없는 의미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