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불안 사회를 읽고 든 생각

2025. 5. 29.

한병철의 『불안 사회』를 읽은 건, 최근 내 삶에서 반복되는 감정을 다잡아보고 싶어서였다. 이루고 싶은 목표는 계속 생겨나는데, 그 목표들이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이뤘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불안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 지금 이룬 성취는 과거의 열등했던 내가 이루고자 했던 부끄러운 목표가 되었다. 무언가를 끊임 없이 이루어야 할 것만 같은 각성 상태가 지속된다. 이러한 나의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왜 무언가를 이루어도 여전히 불안한가? 이 책을 통해 그 질문의 실마리를 잡고 싶었다.

한병철 불안 사회 표지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내 과거 행동들이었다. 밤새 이기지 못할 어려운 상대에 맞서 울분을 삼키며 게임을 하거나, 끊임 없이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담배를 태우며, 일부러 나를 무력하게 만들던 20대 중후반의 사회 초년생 시절의 행동들. 당시엔 그것이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인 줄 알았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나를 일부러 궁지에 몰아넣으며 무너짐 이후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값싼 희망과 성취를 맛보려 했던 것 같다. 한병철은 “희망은 깊은 행복이 그러하듯이, 깨어진 상태에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말을 읽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정말 그런가? 정말 스스로를 파괴해야만 희망할 수 있을까?

30대 중반을 넘어 서는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매달 목표한 금액을 저축하고 있고, 나름대로 큰 자산을 모았다. 생활이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목표를 이루어도 성취감이 들지 않는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이전 목표는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성과는 쌓이는데 만족은 줄어들고, 희망은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다. 더 큰 바람을 희망할수록 나는 오히려 더 깊은 바닥으로 가라 앉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도대체 왜일까? 나는 왜 지금 이 상태를 절대로 도착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떠오른 또 하나의 생각은, 지금껏 의미 있게 희망했던 것들 중 내가 실제로 이룬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학생 시절엔 내가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리라 의심 없이 희망했고, 사회 초년생 시절엔 유명한 디자인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거나, 남들에게 보여 주기 좋은 대기업 입사를 막연히 희망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희망들이 쓸모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나는 그 희망을 품고 행동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다. 한병철은 “희망은 결과와 무관하게, 그것에 의미가 있다는 확신”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통해 나는 내 과거의 이루지 못한 희망들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이제 희망은 반드시 실현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오히려 희망이 있었기에 내가 행동할 수 있었고, 그 움직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그 자체로 희망은 제 몫을 해낸 셈이다. 매일 하루를 살아가게 한 힘. 희망은 내 삶을 조금씩 밀어 왔다. 『불안 사회』는 나에게 불안을 이겨내는 기술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 성과를 강요하고, 투명성을 미덕처럼 내세우며, 감정마저 관리 대상으로 만드는 지금의 사회 구조가 어떻게 불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개인의 희망을 갈취하는 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그래서 이 책은 정직하고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