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1.
지난 도쿄 여행에서 반나절 일정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 다녀왔다. 여행의 이유는 다양하다. 단순히 개인적인 호기심에 이끌리는 것이 일반적인 여행이나, 비록 출장이 아닐지라도 현재 하고 있는 일 또는 커리어에 의해 여행지를 선택하기도 한다. 이번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방문은 후자의 목적으로 방문했다. 해당 블로그의 비즈니스 카테고리를 읽고 있거나 필자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독자라면 눈치 챘겠지만, 현재 운영하고 있는 에어비앤비 공간이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이곳을 방문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 개관한 것은 2021년 10월로, 3년 전의 일이지만 에어비앤비를 준비하며 이 공간을 알게 되었고, 에어비앤비를 운영한 지 6개월이 지나서 이곳을 방문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의 정식 명칭은 와세다대학 국제문학관이다. 이곳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증한 소설 작품 원고와 해외 번역 서적 그리고 직접 수집한 수 만 장의 LP 바이닐 레코드를 만나볼 수 있다. 준비할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가 친분이 있는 건축가 쿠마 켄고에게 직접 설계를 의뢰했다고 하여 건축적으로도 견학해볼만한 여지가 있는 공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 들어선 곳은 와세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주 드나들던 연극 박물관 옆 4호관으로, 위치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선택했다고 한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가을 졸업식이 있는 날이어서 주말임에도 교정이 붐볐다. 축제같은 현지 분위기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더욱 기억에 남는 추억이되었다.
필자는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을 방문해 점심을 먹고 공간을 둘러 보았으며, 이후 와세다 대학 산책을 하고 다시 도서관에 돌아와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에어비앤비 공간에 비치할 기념품 이것저것을 구매한 뒤 여행을 마쳤다. 자세한 후기는 아래 사진과 함께 남긴다.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에 관심이 있거나, 문학 또는 건축을 좋아한다면 앞서 소개한 이런 저런 사유로 방문을 추천한다.
와세다대학 무라카미하루키 도서관을 목적지로 설정한 뒤 우버 택시를 부르니 이곳 와세다대학 동문에서 내려 주셨다.
이곳이 와세다대학이 맞는가 싶은 다소 허술한 동문 출입구. 일단 오른다.
캠퍼스 내부로 들어가니 동문 표지판과 캠퍼스 안내도가 보여진다. 원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 어디인지 찾지 못해 지나는 학생에게 물어 보았더니 바로 뒤편 건물을 가리키며 '여기!'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무라카미하루키 도서관, 공식명칭 국제문학관이 들어선 건물의 외관 모습은 이렇할 특징은 없다.
파사드에 독특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바닥에는 간판이라 부르기 어색한 '와세다 국제문학관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표지판이 있다. 잘 찾아왔구나, 확신했다.
무라카미하루키 도서관 레스토랑 겸 카페인 오렌지캣이 있는 지하1층 출입구로 들어간다.
입구를 들어서면 정면 끝에 뒷뜰로 이어지는 후문이 있고, 사진상 왼편에는 유명한 책장터널 계단이 보인다.
지하1층 입구로 들어서서 바로 좌측 홀로 돌아 들어가면 카운터가 있다.
무라카미후라키 도서관 오렌지캣 직원들은 이곳 와세다대학 학생들이 알바를 한다고 하며, 메뉴도 직접 만든다고 한다.
오렌지캣 카운터 뒤편으로는 무라카미하루키 도서관 및 오렌지캣 굿즈가 판매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랜 파트너인 안자이 미즈마루의 일러스트 엽서들. <중국행 슬로우보트> 원서 표지에 쓰인 배 일러스트를 기념품으로 샀다.
안자이 미즈마루 일러스트가 그려진 에코백과 오렌지캣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도 판매하고 있다. 이건 스킵.
해당 테이블과 책장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사용하던 가구를 이곳으로 옮겨 놓은 거라 한다. (한스웨그너 의자도 그런건지 모르겠다.)
기증된 목재 캐비넷에 전시된 무라카미하루키 라디오 굿즈 머크겁.
그리고 그의 소설과 관련된 이런저런 소품이 귀엽게 진열되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서 가장 기대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업실을 옮겨놓은 방. 아쉽게도 내부를 둘러볼 순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은 아니고, 사용하던 가구나 용품들도 동일하진 않고.. 사무실의 배치만 동일해 보이는데- 어째선지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어쨌든 작가의 작업실을 옮겨 놓은 것이 팬들에게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실제로 사용했던 작업실에는 왼쪽 창문 아래편에 JBL과 탄노이 스피커가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없다. 대신 1층으로 올라가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증한 LP 바이닐레코드 전시와 이를 들어볼 수 있는 청음실이 있다.
오치다 켄이치의 작품.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서인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 일러스트를 그린 작가의 기증 작품이라 한다. 작품 명은 <HORIZON>
오렌지캣 카운터 안쪽에 배치된 가구들은 바깥쪽 가구들과 달리 세월의 흔적이 옅보이는 빈티지 가구이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메뉴판을 본다. 카레와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이곳의 메뉴들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리서치가 안 되어서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세세한 디테일까지 컨셉을 신경쓴 부분에 감탄했다.
입맛에 맞지 않았던 명란 파스타.
그나마 먹을만 했지만, 맛있다고할 수 없는 카레. 이곳에서 식사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입가심을 위해 콜라를 마시려 했으나, 콜라는 메뉴에 없다. 그나마 탄산 종류로는 이 카페의 이름을 딴 '오렌지캣' 소다가 있어서 주문했다. 그런데 위에 올라간 것이 크림. 속이 더 느끼해졌다. 난감해진 배를 부여 잡고 본격적인 투어를 시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친분이 있던 쿠마 켄고에게 직접 의뢰해 완성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와세다 대학의 설립자인 오쿠마 시게노부, 그의 이름 '쿠마, 일본어로 곰'와 발음이 같은 곰(쿠마 くま)을 마스코트로 선정한 것, 건축가는 쿠마 켄고.. 여기저기 쿠마 쿠마 쿠마 투성이다.) 그래서 이곳에 건축 스케치, 정확히 말하자면 외관 파사드 설치물 스케치와 설계 의도가 설명되어 있다.
건물 외부의 지하 1층 입구와 지상 1층 입구를 연결하는 설치 구조물에 대한 건축가 쿠마 켄고의 스케치. 아래는 쿠마 켄고가 이번 프로젝트를 '터널로서의 건축'이라 명명하며 직접 쓴 글을 번역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는 내가 익숙한 일상의 세상 한가운데서 터널 입구가 한꺼번에 열리면서 갑작스러운 방식으로 이것을 경험한다… 나는 터널로 빨려 들어간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나는 오랫동안 건축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있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일한 이후로 이런 유형의 진정한 터널이 만들어졌다."
터널로서의 건축. 쿠마 켄고가 한국에 사무실도 열고 전세계적으로 대형 프로젝트 수주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잘나가는 건축가 답게 컨셉 키워드도 멋지다. 무엇보다 단렌즈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 공간감에 압도당했다. 건축가의 말대로 어딘가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이곳에서 실제로 책을 꺼내 읽진 않으니, 상징적인 요소로서의 전시 공간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운영하고 있는 에어비앤비에도 소장된 레이먼드카버 대성당 원서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한 일본어판본이 전시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책장터널을 지나 지상 1층으로 올라오면 청음실 및 열람실이 있다. 책장터널 계단을 오르자 마자 왼쪽에 청음실입구 있다.
청음실 내부의 모습. 편안한 라운지 소파와 카펫 바닥 그리고 멀리 목재 선반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증한 LP 바이닐레코드가 진열되어 있다.
한스웨그너의 가구들.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전 작업실에서 한스웨그너의 AP-16 라운지 체어에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현재 PP모블러에서 생산되는 이 의자는 개당 1천만 원을 호가해서 이 의자로 배치하진 못한 것 같다. 그렇다 쳐도 너무 좋은 가구들이 세팅되었다.
소파에 앉아 잠시 음악을 감상한다. JBL 스피커로 보이며, 전문가가 음향을 세팅을 해 놓았다고 한다. 음악을 잘 모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용했던 스피커 브랜드를 놓고 보면, JBL은 재즈를 듣기에 좋고, 탄노이는 클래식을 듣기 좋다더라.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
청음실을 지나 코너를 돌면 열람실로 이어진다.
20인이 앉을 수 있는 한 판의 목재 테이블이라. 존재감이 엄청났다. 실제로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는 듯하다. 관람객이 대부분인데 집중이 잘 되었으려나? 별난 걱정이 든다.
열람실 한편에 액자 걸린 사진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찍은 것으로 알고 있는 예전 작업실 데스크 사진이다.
스위스 여행에서 샀다는 스위스 국기 머그컵 (단순히 빨간 색이 눈에 잘 띄어 찾기 쉬워서 매일 쓴다고)과 무민 마우스패드가 눈에 띈다.
열람실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보니 한국어 책도 발견! 시간이 있다면 이곳에 앉아서 책을 읽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필자는 시간이 많지 않아 패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랐다. 2층에는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엘리베이터 2층에서 내리자 마자 보였던 의자. P.C.라고 쓰인 의자인 걸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가 젊은 시절 운영하던 바인 피터캣(Peter Cat)에 쓰던 의자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엄청 의미 있잖아!)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 라디오. 라디오 녹음실을 이렇게 2층에 마련해 놓았다. 복잡한 선들이 얽혀 있는 걸 보니, 단순히 분위기만 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녹음이나 대담이 이루어지는 장소일 수도 있겠다.
내가 방문한 날에는 프란츠 카프카 기획 전시가 열렸다. 별 감흥은 얻지 못하고 다시 1층으로.
1층 출입구를 통해 야외로 나와 바깥 공기를 쐔다. 청명한 초가을 날씨에 기분이 좋았다.
지상 1층에서 지하 1층으로 이어지는 구조물 역시 쿠마 켄고의 작품이다. 처음엔 금속으로만 만든 것인줄 알았는데, 역시 쿠마 켄고 답게 나무패널을 섞어서 만들었다. 이 구조물의 의도에 대한 설명을 찾지 못했고, 미학적으로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 자신의 시그니처를 이곳에 남긴 것이 아닌가 싶은 정도. 확실한 건 눈.에.띈.다!
다시 지하1층 카페로 들어와 커피를 한 잔한다. 이번엔 안쪽 빈티지 가구가 아닌, 바깥쪽 새 가구가 놓인 라운드 테이블 좌석을 잡았다.
꼭 카페를 이용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책을 열람할 수 있다. 사진상에 보이는 책장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의 컨셉에 따라 관련된 서적들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편에 후원자 명단이 나무 하나하나에 새겨진 것은 아니고, 프린팅되어 있었다. 후원으로 이런 걸 만들 수 있다니. 어떤 사람들이 후원했는 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와세다대학 동문이 아닐까? 엄청난 맨파워다.
오렌지캣 푸어오버 커피를 맛있게 한 잔했다. 오리지널 라이브러리 블렌드라 한다.
커피를 마시며 동행한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누고, 후문으로 빠져나가기로 한다.
후문 야외 정원이 예쁘다. 날씨가 좀 더 시원했다면 야외 테라스나 이곳 정원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으리라.
야외 정원 계단을 따라 오르면 와세다대학 연극 박물관이 보인다. 연극을 전공했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곳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하며,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 들어선 국제문학관의 위치를 이곳, 연극 박물관 옆으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정문을 향해 걸으며 캠퍼스를 산책한다.
정문으로 이어지는 길, 가로수가 엄청나게 높게 자랐다. 아마 와세다대학의 전신인 도쿄전문학교가 지어진 1880년대 부터 이곳에 있지 않았을까?
와세다대학의 설립자인 오쿠마 시게노부. 우연히 이날이 가을 졸업식이어서, 이곳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선 졸업생과 가족들의 행렬을 감상할 수 있었다.
캠퍼스를 나가려다가 와세다대학 역사 박물관 내 기념품샵이 보여서 잠시 들렀다.
창립자 오쿠마 시게노부와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마스코트로 지정된 곰, 와세다베어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기념품 샵에는 엽서, 볼펜, 공책 등 각종 문구류를 판매했다. 필자는 이번 방문이 꽤나 즐거웠어서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자, 볼펜과 오쿠마강당 마그넷을 구매했다.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와세다대학 가을 졸업식의 분위기에 괜히 내 마음이 들떴다. 와세다대학 정문 오쿠마 강당을 지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위 이미지는 무라카미하루키 도서관과 와세다대학 기념품샵에서 구매한 것들을 필자가 운영하는 숙소에 비치한 사진이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일러스트 엽서를 액자에 걸었고, 와세다대학 볼펜과 오쿠마 강당 마그넷을 비치해 두었다. (운영 중인 숙박공간이 궁금하다면 여기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이번 여행의 감흥이 숙소를 찾은 게스트 분들께도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