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정영진어가 향어백숙 리뷰

2024. 9. 1.

지난 6월 교토 여행에서 맛집 투어를 다녀온 뒤, 건강한 식단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도쿄에서 방문했던 맛집들은 하나같이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요리들을 선보여, 미세하고 섬세하게 미각을 즐길 수 있었다. 귀국 후 평소 즐겨 먹던 음식점과 배달 음식의 맛이 갑자기 지나치게 짜고 자극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침 다이어트를 결심하면서, 집에서 건강한 재료로 직접 요리하거나 그런 음식을 제공하는 곳을 찾아 식사를 하게 됐다. 건강을 위해 좋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여름 휴가로 강원도 정선을 다녀왔다. 결혼 후 여행 계획은 늘 아내가 세우는데,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저녁 식사 장소로 '정영진어가'를 예약했다. 정영진어가는 금, 토, 일 3일만 영업하고, 하루 4~6팀만 받는다. 보통 2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라고. 그 이유는, 이곳에서 사용하는 모든 식재료가 사장님의 가족 소유 땅에서 직접 재배된 것이기 때문이다. 방문 전에는 다소 의아했지만, 직접 음식을 맛보고 나니 그 원칙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영진어가는 1976년에 정영진 할머니가 처음 시작하여, 딸과 손주가 대를 이어 50년 동안 운영해 온 전통 있는 식당이다. 3대째 가게를 이어오는 사장님은 과거 전통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고 소개해 주셨다. 오늘날 대부분의 식재료는 기계로 일군 땅에서 화학 약품을 사용해 재배되지만, 이곳에서는 가족이 직접 손으로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재배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 이곳은 말로만 듣던 '팜 투 테이블'과 '슬로우 푸드'를 진정으로 실천하는 식당이었다.

그 설명을 들은 후 요리를 맛보니, 식재료 하나하나의 깊은 맛이 더욱 느껴졌다. 원래는 운전을 해야 해서 술을 마실 계획이 없었지만,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대리를 부르기로 하고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술을 두 잔 마셨다. 식당 곳곳에는 다양한 언론사에서 취재한 기사가 액자로 걸려 있었다. 정영진 할머니의 향어백숙이 강원도의 대표 음식으로 소개된 기사를 보니, 이곳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식당 입구에 붙은 "100년을 꿈꾸는 식당"이라는 표어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정영진어가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추억하며, 블로그 방문자들과 이 소중한 기억을 나누고자 이 글을 적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진과 함께 확인해 보길 바란다.

정영진어가 덕송리 일대 풍경

강원도 4박 5일 여름 휴가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정선 정영진 어가를 방문했다.

정영진어가 출입구 전경

간판과 외관 곳곳에 그려진 물고기(아마도 향어가 아닐까)가 심상치 않다. 정영진어가 간판 중 '진'에서 'ㄴ'이 지워져 전영지 어가가 되었다. 못된 어린이가 장난을 친 걸까? 사장님은 지워진 간판에 여의치 않는 듯하다.

정영진어가 오래된 간판

이 간판은 훨씬 더 오래전의 것으로 보인다. 타이포그래피에서 세기 말 감성이 느껴진다.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식당임을 알 수 있다.

정영진어가 전경 돌다리길1 번지

정영진어가의 주소는 돌다리길 1번지이다. 길 이름도 귀엽고 번지수도 멋있다.

정영진어가 출입구 진입로

주 출입구로 들어가는 길, 식물이 심겨져 있어서 비밀 정원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2달 전부터 예약했던 방문이라 더욱 설랬다.

정영진어가 출입구

외벽을 보아하니, 목구조에 흙으로 마감한 (적어도 외관 상) 주택을 식당으로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1976년부터 시작된 정영진어가는 2번 이사를 했다고 한다. 1976년 남평리에서 시작, 1992 석곡리로, 그리고 2018년 이곳 돌다리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정영진어가 출입구 메뉴와 원산지 표시

"대부분의 재료는 직접 재배합니다."

정영진어가 출입구 풍경

할머니집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입구의 정취가 정겹다.

정영진어가 출입구 물고기 모양 발매트

파란색 바탕에 흰색 물고기가 그려진 발매트를 밟고 실내로 들어선다.

정영진어가 오래된 출입문 흔적

안은 어떤 느낌일까 두근두근 문을 연다.

정영진어가 실내에 진열된 각종 술

실내로 들어서니 사장님보다 우리를 먼저 반긴 건 각종 전통주가 진열된 술 진열대다. 혹시나 대리가 안 될까 싶어서 술 예약을 안 했는데.. 어쩐지 술을 한 잔 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정영진어가 실내에서 본 출입구 풍경

가장님의 따뜻한 환대를 받고 자리를 안내 받았다. "강원도에 향어백숙을 먹으러 간다" 하면 으레 생각 나는 식당 분위기와 사장님의 풍모가 있는데, 사장님이 생각보다 젊으시고 조심조심 정갈한 태도로 응대를 해 주셔서 좋은 의미에서 의외였다.

정영진어가 실내에 장식된 물고기 인형과 액자

입구부터 심상치 않게 보였던 물고기 굿즈는 사장님이 이곳저곳 여행을 하며 사 모으신 것들이라 한다.

정영진어가 좌석에 안내된 메뉴와 물고기 모양 풍경

메뉴는 향어백숙과 향어 찜, 송어 비빔회, 돼지 조림 4 가지가 있는데 대표 메뉴인 향어백숙을 예약했다. (2달 전 메뉴는 이미 선택 한 상태) 그리고 다행히 대리운전 기사님을 구해주신다 하여 추천해 주신 잔술도 곁들이기로 했다.

정영진어가 목조주택 높은 천고

따뜻한 환대 및 메뉴 설명을 듣고 실내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정영진어가 레트로한 분위기의 천장등
정영진어가 물고기모양 벽걸이
정영진어가 물고기 모양 전등 스위치
정영진어가 물고기 모양 쟁반

이 물고기 쟁반은 커피 가루를 놓는 방향제의 용도인 것으로 예상되는데, 태국 여행에서 사 오셨다고 한다.

정영진어가 돼지감자 차

얼마 지나지 않아, 돼지 감자 차를 내어 주셨다. 올 2월에 수확하고 5월에 말린 돼지감자를 우린 차라고 하신다. 수확한 날짜와 말린 날짜를 기억하시는 걸 보면 정말 세세한 것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손수 챙기심이 틀림 없다.

정영진어가 비트찹쌀 죽

애피타이저로 나온 찹쌀 죽은, 작년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수확한 비트로 만드셨다고.

정영진어가 비트찹쌀 죽

설명을 듣고 먹어서 그런지 더욱 깔끔하고 찹찹 입에 붙는 찰진 맛이다.

정영진어가 밑반찬 요리와 동치미

그리고 밑반찬이 나왔다. 김치부터 시계방향으로, 담근 지 5주가 된 김치, 담근 지 1년이 되어 볶은 김치, 오늘 딴 곤드레, 그리고 담근 지 13주가 된 동치미이다. 백년 전 그대로 농법, 비료부터 수확까지 농기계 없이 직접 땅을 갈고 작물을 심어 재배하신다고 한다. 어쩌면, 정영진어가의 요리에 대한 철학은 메인 매뉴가 아닌 이 밑반찬에서 잘 드러난다.

정영진어가 갓 지은 밥

그리고 방문일 기준 4~5일 전인, 화요일에 도정하고 수요일 도착한 쌀로 갓 지은 밥. 한알한알 씹히며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지는 맛있는 밥이었다.

정영진어가 전통주

나와 아내는 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여 추천해 주신 전통주를 마셨다. 메모로 적어 주셨는데 이름은 기억나질 않는다. 달콤쌉쌀한, 이날 뜬 보름달 같은 맛이었다. 플레이팅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진 모습이 감동적이다.

정영진어가 전통주

아내와 결혼하고 첫 여름휴가를 기념하며 짠-☆

정영진어가 향어백숙

그리고 나온 메인 메뉴. 반 백년을 이어 온 강원도 전통 요리 향어백숙. 

정영진어가 향어백숙

아내는 민물고기 요리가 자칫하면 비린 맛이 나서 되도록 먹지 않는데, 이곳의 민물고기 요리 향어백숙은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맑고 담백하여 몸보신이 제대로 되었다.

정영진어가 향어백숙

다만 가시가 많아서 한 입 먹을 때마다 가시를 뱉어내야 했다. 정말 맛있게 먹었기에 큰 불편함은 아니었다.

정영진어가 감자전

사이드 메뉴로 나온 감자전이다. 감자 본연의 맛을 위해 기름을 최소화해 정성들여 구우셨다고 한다. 자극적인 맛 하나 없이 감자 본변의 쫀득하고 달콤한 맛이 전통주와 잘 어울렸다.

 

정영진어가 빈 자리

나와 아내 테이블 외에 2개 테이블이 더 있었는데, 먼저 온 한 테이블은 먼저 자리를 비웠다. 이래저래 자리를 마련하면 20명은 앉겠던데, 이날 저녁은 딱 6명만 받으셨다. 룸은 아니지만 프라이빗하고 오붓한 저녁식사 분위기였다.

정영진어가 전통주

아내가 남긴 술을 한 모금 더 마시고 자리를 정리한다.

정영진어가 잡지에 소개된 전영진 할머니

나가는 길 액자에 걸린 정영진어가 할머니의 언론 기사 인터뷰를 천천히 살펴 본다. 여느 우리 할머니의 푸근함이 느껴지는 인상에, 뵙지도 못하였지만 친근하게 느껴졌다. 

정영진어가 향어 백숙을 요리하는 정영진 할머니 액자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고, 이를 대를 이어서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영진어가 해 진 뒤 입구 모습

어느덧 해가 지고..

정영진어가 불 켜진 창문

식당에 손님도 다 떠났다.

정영진어가 해 진 뒤 입구 간판 모습

다음에 또 방문하길 기약하며, 호텔로 돌아간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본 보름달

숙소로 돌아가는 길, 보름달이 휘엉청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