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4.
마루후쿠로 호텔을 예약할 당시 조식 옵션은 추가하지 않았다. 호텔 주변에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이 여럿 있었고, 그곳에서 다양한 일본의 전통 아침 요리를 경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난 뒤에 ‘이렇게 디테일이 세심한 호텔의 레스토랑은 어떻게 운영이 될까?’라는 호기심에 호텔 레스토랑인 카르타 カルタ carta 에서 아침 한 끼와 저녁 한 끼를 먹기로 계획했다. 객실 18개를 갖춘 부티크 호텔의 레스토랑답게 조식은 뷔페가 아닌 코스식으로 제공되고 점심 식사는 제외, 아침과 저녁 식사만 제공한다. 아침식사 메뉴는 양식과 일식 중 선택할 수 있다. 저녁식사 메뉴는 양식 단일 코스로 제공되지만, 레스토랑 추천 페어링 음료 또는 무제한 프리 음료 중 음료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아침 시간은 오전 7시부터 11시까지(라스트 오더 10시), 저녁 시간은 오후 5시 30분부터 11시까지(라스트오더 9시)로 운영된다. 레스토랑 예약 사이트에 저녁 식사 예약만 가능한 걸 보니, 조식은 호텔 투숙객에게만 제공하는 듯하다. 식사 비용은 아침과 저녁 각각 1인 4천 엔, 9만 5천 엔, 저녁 음료 추가비용 별도이다. 호텔 투숙객은 룸차지가 가능하다.
카르타는 요리 전문가 호소카와 아이 細川亜衣 씨가 요리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및 식기까지 감수한 레스토랑이다. 일본 고유의 향신료, 조미료, 발효 식품을 사용하여 계절의 변화에 맞춰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요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요리 감수에 있어서 그녀는 손님이 ‘요리사의 작위를 느끼게 하지 않게’ 하도록 요리사에게 조리법을 전수한다고 한다. 레스토랑 소개 란에서, 이곳의 요리를 형용할 때 야사시 優し 라는 단어를 쓴 것은 부드럽다는 물리적 식감뿐만 아니라 친절하고 겸손하다는 요리사의 정신적 태도도 내포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르타 カルタ carta 라는 네이밍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카르타는 일본의 카드놀이를 의미하는 단어로 일본어로 가루타라고 발음한다. 카드놀이를 제작하며 성장한 기업, 닌텐도의 사옥이었던 장소성에 아주 걸맞은 이름이다. 게다가 도예가가 손으로 빗어 만든 타일과 식기류, 유리작가가 만든 조명, 구리를 두들겨 펴서 만든 숟가락 등 이 레스토랑에 존재하는 수많은 손으로 만들어 낸 물성들을 떠올려 보면, 약 500년 전 사람들이 손을 이용해 즐겨 온 카드놀이를 뜻하는 이름은, 이 이름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당위성까지 부여한다.
이곳의 구글 리뷰는 3점 대로 비교적 낮은데 대체적인 평은 이렇다. ‘맛있게 먹었지만 가격이 비싸다.’ ‘셰프가 없는 것 같다.’ … 필자의 생각에는 카르타가 서울의 코스요리 레스토랑과 비교하여 가격이 비슷한 반면, 장소성과 디자인 등은 오히려 뛰어나다고 느꼈다. 한편, 셰프가 없는 것 같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호소카와 아이 씨의 감수 철학이 요리사의 작위를 느끼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녀의 의도가 잘 반영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요리의 맛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필자는 이곳의 요리와 분위기에 매우 만족했다. 자세한 감상은 아래 사진과 함께 남긴다. 혹시 이 글을 우연히 발견한 당신이 교토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곳의 호텔에 묵지 않더라도 카르타의 저녁 식사를 적극 추천합니다.
카르타 조식 코스 양식 & 일식
마루후쿠로 호텔 조식당은 로비를 거쳐 밖으로 나와 야외 길로 돌아가야 한다. 담장 안의 야외 복도로 진입할 수 있는 문이 본래 있으나, 의도적으로 막아 두었다. 스태프의 말에 따르면, 레스토랑을 감수한 소코아와 아이 씨께서 "카르타의 세계관은 이곳(야외 대문)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르타 레스토랑 입구로 향하는 길 멀리서 왜가리 동상이 있나 싶더니, 점점 가까워질수록 살아 있는 왜가리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저기 멀리 민가의 지붕 위에 2마리의 왜가리도 보인다. 왜가리는 독립적성이 강하다 들었는데 이렇게 같이 있기도 하구나. (1m 이상 거리를 두고 있는 걸 보고 같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때 인도에 서 있던 왜가리 한 마리가 민가를 가로지르며 비상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저기 멀리 떠나가는가 싶더니,
담장 너머 검은 고양이가 있는 담벼락에 섰다. 검은 고양이와 왜가리라.. 이곳의 일상적인 풍경인 걸까?
호텔 로비에 있는 왜가리 모형, 그것도 수백 년 된 벽지로 만들어진 왜가리 모형을 지나 카르타 레스토랑 앞에서 살아 있는 왜가리를 만나다니, 왠지 오래전으로 타임워프를 한듯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것만 같다. 호들갑은 그만 떨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간다.
간판은 부식된 철제에 로고를 각인한 형태다. 2022년 오픈한 호텔 레스토랑이니, 아마도 자연스럽게 부식된 게 아닌 의도적으로 부식된 철제를 사용했으리라. 1930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의 정취에 제법 어울리는 사인이다.
나무 울타리로 막혀 있는 저 너머가 호텔 야외 복도이다.
아마도 이 돌계단은 1930년대 지어진 그대로의 것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카르타가 있는 건물은 닌텐도 사옥의 3개 동 중 창고로 쓰였던 동이라 한다.
위 사진 상 흰색 창살 문이 진입로이다. 들어서자마자 'ㄷ'자 반듯한 바 테이블을 마주한다.
바 테이블 옆으로는 4인용 라운드 테이블 2개가 있다.
라운드 테이블 옆으로 동향 창이 나 있다. 아침엔 이곳으로 햇살이 비춘다.
방문한 아침에 매실을 햇살에 말리는 중이어서 점내에 매실 향이 그윽하게 퍼졌다. 향도 좋지만, 보기에도 예쁘다.
숟가락이 일반적인 숟가락보다 1.5배 크고 다소 납작한 형태였다. 구리를 두들겨 만든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매장에 들어서면 먼저 커피와 차 중 원하는 음료를 요청한다. 요청에 따른 음료와 조식 메뉴가 함께 준비된다.
아내는 차를 주문했고, 나는 커피를 주문했다.
카르타 조식 메뉴는 2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웨스턴 스타일 조식, 다른 하나는 재패니즈 스타일 조식이다. 필자는 편의상 양식과 일식으로 부르겠다. 필자는 양식을, 아내는 일식으로 선택해 모두 맛보기로 한다.
메뉴 뒷면에는 음료가 있다. 조식 가격 4천 엔에 해당 음료 가격도 포함되어 (아마도..) 원하는 음료를 편하게 요청하면 가져다준다.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한다.
필자는 양식을 먹었으니, 일식에 대한 평은 생략하고 사진만 남긴다.
달콤 쌉쌀한 당근 향이 입맛을 돋운다. 부드럽고 따뜻한 수프가 공복을 채우는 느낌이 좋다.
아침부터 핫도그라.. 조식으론 생소한 메뉴였으나 소시지가 짜지 않고 절인 양배추와 어우러져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그리고 나온 샐러드와 치즈 에그. 치즈 에그는 신선한 유제품 향이 기분 좋았고 조금 짭조름했다.
치즈 에그의 짠맛 덕분인지 신선한 야채의 맛과 향이 하나하나 느껴지는 듯했다. 야채가 이렇게 맛있었나?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 기대를 갖고 주변을 둘러본다. 카르타 교토의 펜던트 조명은 유리 공예가가 직접 손으로 빗은 것이라 한다. 디너에 쓰인 컵도 동일한 작가가 만든 것 같았다.
아침 식사 예약에 유아 동반 손님이 있는지, 어린이용 좌석과 그릇이 귀엽게 준비되어 있다. 분명 산뜻한 아침 햇살에 어울리는 귀여운 손님이었을 게다.
일식 메뉴의 메인은 달걀밥. 아내는 든든한 탄수화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배로 밥을 와구와구 밀어 넣었다.
양식의 메인메뉴는 샌드위치다. 연유크림을 얹은 식빵에 신선한 딸기가 오르고 그 위를 달콤한 머랭으로 덮었다.
어릴 때 맛있게 먹었던 딸기 샌드위치맛의 최상위 버전.. 맛있다고 밖에 표한할 수 없다.
오렌지 주스를 따른 잔이 얇고 고급스러워 상표를 살펴본다. 기무라 글라스. 이 레스토랑은 되도록 지역의 것, 일본의 것을 사용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리고 찻잔을 한 손에 쥐었을 때 새끼손가락 받침 부분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을 피부르 느끼고 잔 아래를 살펴보았다. 저곳을 새끼손가락 끝으로 받치면 묘하게 균형 잡힌 기분 좋음이 있다. 제작자는 이를 의도하고 만들었으리라.
마지막 요거트까지. 아쉬운 마음에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살펴보며, 오랫동안 시간을 두고 먹었다.
지나치지 않은 고급스러운 달큼함이 입안에 남아 식당을 나가는 순간까지 입안의 감각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잘 먹었습니다.
어느새 떠나고 사라진 왜가리가 아쉽던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니 왜가리가 보란 듯이 날아간다. 저 녀석은 오전에 마주친 왜가리 1, 2, 3, 4 중 어느 녀석이었을까? 넌 평범한 왜가리가 아니지?
카르타 교토 디너 페어링
저녁 식사를 하러 카르타 교토를 다시 찾았다.
오전에 만난 고양이를 또 만났다. 이 주변이 저 아이의 영역인가 보다.
아침 햇살에 잘 보이지 않던 간판의 글씨가 저녁 어스름에 되려 잘 보인다.
오전의 산뜻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차분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저녁이 되니 손으로 만든 유리 펜던트 조명의 그림자가 천장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저녁 메뉴판 커버의 색상은 오전과 달리 검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세심한 변화다.
카르타 디너 메뉴는 양식코스로만 운영된다.
조금 독특한 점은 주류 서비스인데, 프리 플로우 free flow 옵션과 페어링 pairing 옵션이 있다. 프리플로우는 원하는 음료를 무제한으로 마시겠다는 옵션이고, 페어링은 레스토랑에서 각 요리에 맞추어 추천하는 음료를 제공한다. 필자는 페어링을 선택해 마셨다.
메뉴에 주류 리스트가 있고,
논 알코올 메뉴도 있다.
첫 음식으로 크림 고로케가 나왔다. 신선한 고로케 튀김이 스파클링 와인과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말고기를 맛봤던 적이 있나? 기억으론 없다. 말고기에 대한 최초의 기억을 쌓았다. 부드럽지만 다소 질긴 식감, 그리고 특유의 향이 있었는데 호인지 불호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몇 번 씹다가 그대로 로제 와인과 함께 삼켰다.
오전에 먹었던 완두콩이 또 나왔다. 이곳의 야채는 식감의 조합도 그렇고 야채 각각의 맛이 하나하나 느껴져서 야채가 이렇게 맛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샐러드와 함께 나온 주류는 사케다.
그리고 화이트와인과 함께 조개탕을 먹었다. 점점 술기운이 오르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기분 좋게 취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메인 요리인 함바그가 레드 와인과 함께 서빙됐다. 그러고 보니 모든 음료는 일본산이다. 일본산 와인을 맛보는 것도 처음이다.
함바그도 함바그대로 맛있었지만,
함바그와 곁들여 먹는 레몬 밥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오전에 그랬듯 메인 메뉴를 게걸스럽게 해치웠다.
디저트로 나온 롤 케이크와 커피. 저녁인지라 디카페인 커피로 요청해 마셨다. 떠나기가 아쉬워 아내와 오래 대화하며 디저트를 아껴 먹었다.
가모가와 강 산책
식당을 나와 주변 가모가와 강 산책을 하기로 했다. 식당을 나서는 길 입구 조명이 기분 좋게 켜졌다.
서울의 여느 하천변은 밝게 조명이 설치되어 있는데, 가모가와 강은 산책로에 조명이 없어 어두웠다. 완전히 해가 넘어가기 전이라 강변을 걸을 수 있었다.
가모강에서도 왜가리 성체 4마리를 보았다. 청년쯤으로 보이는 왜가리 1마리도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 서식하는 한 가족인가 보다. 1930년에 지어진 닌텐도 사옥 내 타일 장식에 왜가리가 등장하는 걸 보면, 그때부터 또는 그보다도 훨씬 과거부터 이곳을 지켜온 왜가리 가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 둘 불을 밝히는 가모가와 강변 주택가 풍경이 아름답다.
헌데 하늘에 손바닥 만한 새 때가 주변을 맴돌기에 유심히 살펴보니 박쥐가 아닌가? 한자문화권에선 박쥐 복(蝠) 자가 복 복(福) 자와 음이 같아 복을 불러오는 동물로 여겼다 한다. 마루후쿠로(丸福樓) 호텔의 이름에도 복이란 단어가 쓰인 것을 보면, 여러모로 기이한 경험의 연속이다.
복잡 미묘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교토의 마지막 밤이 저문다. 다음 방문을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