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 인생의 역사

2023. 1. 16.

신형철 시 평론집 ‘인생의 역사를 읽었다. 작가의 전작인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그의 글에 푹 빠져 신간을 오래 기다려 왔는데, 4년 만의 신간 ‘인생의 역사가 출간되어 오랫동안 아껴 읽었다. 신작이라고 하나 대부분의 글은 전작이 출간되기도 전인 2016년 한 해 동안 한겨레 지면에 연재했던 시 평론을 2022년에 고쳐 엮은 것이다. 작가가 책을 엮은 계기는 그해 태어난 아들에게 선물하기 위함임을 책머리에 밝힌다. 작가가 책을 엮으며 쓴 프롤로그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 대한 평론이다. 이 평론은 작가가 밝히듯 아들인 “너”에게 쓴 일종의 편지이자, 아버지가 된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아주 사적이어서 더욱 마음에 와닿은 이 첫 평론에 매료된 이후, 근 한 달 동안 책에 빠져 지냈다.

 

시는 어렵다고 생각하면서도, 시가 왜 어려운지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않았다. 시가 살아가는 데 꼭 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를 읽고 시가 왜 어려운지, 그리고 시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에 대한 생각을 이번 글에 정리해 두고자 한다.



시는 왜 어려운가? 시는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가 얼마나 친절하지 않냐면,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황지우의 시 ‘나는 너다 44에는 ‘민주주의’란 단어에 ‘민’을 빼 ‘주주의’라고 적고, ‘싸웁시다’에서 ‘싸’를 빼 ‘웁시다라고 쓴다. 시인이 광주민주화 운동 시절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서울에 유인물을 뿌린 투쟁가이자, 이 일로 고문을 당하며 허위자백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이 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시를 이해하기 위해선 “상상력이 아닌 전문가가 알려주는 ‘사실’”이 필요하기도 하다. 윌리스 스티븐스의 시 ‘아이스크림 황제를 읽기 위해서는 1920년대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과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어떤 시는 작가 스스로 시에 담고자 한 의미를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 나희덕의 시 ‘허공 한줌에서 어머니는 난간에 위험하게 걸터 앉은 아기를 안고자 두 손을 뻗지만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다. 이때 아기를 향해 뻗은 두 손의 의미는, 의심의 여지 없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으로 해석하게되지만, 어느 인터뷰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고 나면 ‘사랑’이 아닌 ‘집착’으로, 완전히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어떤 시를 안다고 말하려면 시가 쓰여진 배경과 작가의 의도까지 파악해야 한다. 독자인 내가 시와 1:1로 맞딱드린 상태에서 시는 시로서 온전히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시는 어렵다.



그렇다면, 시는 왜 필요한가?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고,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생은 왜 질문하는 만큼 살아지나? 삶이란 곧,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답하는 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가만히 있더라도 주어진 환경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존재여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끊임 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 살아진다. 그럼 그 답은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진실에 가까운 답을 얻으려면 깊은 질문을 던저야 한다. 가장 쉬운(얕은) 질문은 눈에 보이는 것인, 내가 사는 곳, 타는 것, 드는 것 등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며, 이에 대한 답은 자이, 벤츠, 샤넬로 상징되는 브랜드다. 이는 가장 직관적이고 강력한 답인 반면, 가장 진실에 먼 답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어려운 질문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어려운 질문에 다가간 경험은 문학과 함께했을 때이다. 소설 ‘편의점 인간', ‘저지대’, ‘캐롤’이 순서대로 떠오른다. 다른 소설들보다 이 3개의 소설이 먼저 떠오른 이유는 소설을 쓴 작가의 삶 때문이다. 40대 독거 여성 편의점 알바생으로써 글을 쓰는 ‘무라타 사카야. 모국어인 뱅골어와 생존어인 영어가 아닌, 스스로 선택한 제 3의 언어인 이탈리아어로 소설을 쓰는 ‘줌파 라히리’. 성 정체성을 숨긴 채 레즈비언 소설을 써야만 했고, 먼 훗날에야 이를 밝힐 수 있었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이들의 삶은, 소설이 던진 질문들을 관통하며, 독자인 내가 누구인지 답하게 만든다.

 

 

나는 글만 보고 쉽게 시를 이해하려 했기 때문에 시가 어려웠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는 시인의 삶을 통해 시를 이해함으로써 더 진실된 나에게 다가갈 때라고, 이 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다. 먼 훗날 내 인생의 역사를 돌아 보았을 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가장 진실된 답은 시에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신형철 인생의 역사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