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변화

by 보심 · 2020. 8. 9.

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영어권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지만,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인도인 부모 밑에서 벵골어를 쓰며 자랐다. 하지만 그는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영어를 배워야만 했다. 그에게 벵골어가 모국어라면, 영어는 생존어였다. 그는 스스로 벵골어와 영어 어느 것과도 일체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는 "번개에 맞은 것처럼" 이탈리아어에 매료된다. 보스턴에서 르네상스 건축을 공부하던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이탈리아어를 외국어가 아닌 듯 친숙하게 느꼈다. 이탈리아어를 배우지 않으면 자신이 완성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작가는 피렌체를 여행한 뒤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벵골어, 사회로부터 강요받은 영어가 아닌, 자기 스스로 선택한 언어인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 것을 두고 "나의 삶 안에서 벌어진 영어와 벵골어의 긴 싸움으로부터 도주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미 영어로 퓰리쳐상을 받은 작가이지만, 그녀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며 이탈리아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어로 쓴 첫 번째 책이 수필집,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이다. 그리고 이 수필집에는 짧은 단편소설 <변화>가 실렸는데, 이 역시 이탈리아어로 쓴 첫 번째 소설이다.

 

 

마음산책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표지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여인, 번역가가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이 작가 스스로 이탈리아어에 매료된 원인을 찾기 위한 시도였다고 생각했고, 소설 속 은유에 감춰진 그 원인을 찾아내고자 했다. 첫 문장에서부터 명백히 밝히듯이 주인공 번역가는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번역가 스스로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지웠다. 우선 작은 여행 가방 하나만 남기고 모두 버리거나 치워버렸다. 그리고 아는 사람도 없고, 언어도 모르고,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도시로 까만 스웨터를 입은 채 떠났다.

 

번역가는 여행지에서 밤에는 잠이 잘 왔고, 아침에는 불안감 없이 눈을 떴다. 그곳에서는 미래도, 과거도 생각하지 않았다. 존재는 한결 가볍게 느껴지고 이름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살아 있다고 느꼈다.  이렇듯 번역가가 본인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떠난 이 여행은 성공적인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씨 궂은날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번역가는 여인들 여럿이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돌로 지어진 건물에는 빗물에 젖어 읽은 수 없게 된 게시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는 호기심이 생겼고 여인들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돌로 지어진 건물은 패션 디자이너의 프라이빗 상점이었다. 건물 내부에는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까만색 옷들이 진열돼 있었다. 앞서 들어온 여인들은 저마다 자신의 치수에 꼭 맞는 옷들을 입어보고 있었다. 여인들을 따라 번역가 역시 자신에게 맞는 옷들을 찾아 입어보았다. 옷은 우아하고 자신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는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자신 같지 않다고 느꼈다. 그리고 더는 무엇도 쌓아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옷을 사지 않았다. 번역가는 자신이 입고 온 검은색 스웨터로 갈아입으려 했지만 옷을 찾을 수 없었다. 여주인이 옷을 찾아주었지만, 자신의 옷이 아닌 것 같았다.

 

번역가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검은색 스웨터를 입자 자신을 야금야금 갉아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무시무시한 불안감을 느꼈다. 번역가는 어쩔 수 없이 그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자신의 옷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검은색 스웨터가 자신의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 스웨터는 더는 예전과 같은 스웨터, 자신이 찾던 스웨터가 아닌 듯 했다. 스웨터를 봤을 때 느꼈던 무시무시한 불안감은 게다가 그 전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번역가는 스웨터를 입자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여인, 번역가가 마침내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소설을 읽고 ‘검은 옷’과 ‘여인들’ 은유에 대해 생각했다. 돌로 지어진 건물에서 판매되는 ‘검은 옷’은 텍스트로 쓰여진 ‘언어’를, 건물에서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옷을 찾아 입는 ‘여인들’은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들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옷들을 입어보고 자기 답다고 느끼지 못한, 어떠한 것도 쌓아두고 싶지 않았던 주인공 번역가는 언어에서 소외된 줌파 라히리 자신일 것이다. 변화하길 원하고 존재의 증거를 지우기 위해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자기 답지 않다거나 쌓아두기 싫다는 이유로 자신과 어울리는 옷을 사지 않는 아이러니는, 줌파 라히리가 언어를 대하는 태도와 닮았다.

 

작가가 소설에서 명확히 답하지 않은 질문이 있다. 그것 질문은 ‘번역가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이는 애초에 번역가가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답이 될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해 다시 소설로 돌아가, 번역가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장면을 들쳐 본다. 번역가는 빗물을 보며, 빗물이 구름에서 떨어져 땅속에 스며들어가 강을 채우고 바다로 흘러가는 여정을 생각했다. 반면, 거리에 고인 물웅덩이들은 바다로 흘러가지 못할 운명이었다. 또한, 번역가는 돌로 지어진 건물 바닥에 널브러진 검은 옷(언어) 더미들을 보고도 “웅덩이 같았다”라고 표현했다.

 

바다가 소설가로서 가 닿을 수 있는 궁극의 경지를 은유한다면, 바다로 갈 수 없는 웅덩이는 작가로서 성장 가능성이 없는 상태의 은유이다. 소설 속 번역가가 검은색 웅덩이 같은 옷 더미에서 자신의 검은색 스웨터를 찾는 장면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자신이 작가로서 성장 가능성이 없다는 비관론에 빠져 있지 않았을까 한다. 스스로 과분한 상(퓰리처)을 받았다는 생각과 함께 작가로서 계속 성장해 궁극에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압박감이 이러한 비관론으로 이어지진 않았을 까 짐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높아진 대중의 관심으로 인해 순수한 창작의 즐거움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번역가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보조관념 질문을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원관념 질문으로 바꾸어 답을 내리자면, ‘작가로서 더욱 성장하고,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서’이다. 수필에 쓰인 작가의 말을 빌려 글을 마친다. "평생 나는 공허에서 멀어지려 했다. 그 공허는 날 당황시켰고, 난 거기에서부터 도망갔다. 그 때문에 나 자신에 만족하지 못했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유일한 해결 방법인 듯했다. 글을 쓰면서 난 등장인물들 안에 날 숨기고 내게서 도피할 방법을 찾아냈다. 날 계속 변화시키는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