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5.
8년 전 휘트니 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를 몇 시간이나 푹 빠져 봤다. 10일쯤 혼자서 여행 중이던, 몹시 외롭던 때여서 더 감상에 젖었는지 모른다. 그림 속 적막한 풍경 속에 혼자 있는 사람들이 자아내는 독특한 분위기는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까지 내가 외로울 때마다 그 감각 그대로 되살아나 나를 위로하는 것만 같다.
학고재갤러리에서 팀 아이텔의 전시가 열린다. 전시가 얼마 남지 않은 주말에 갤러리를 찾았다. 전시 일정 막바지에 쫓겨 급하게 찾은 느낌이 있었지만 단풍이 아름다운 북촌을 덤으로 산책할 수 있어서 좋았다.
팀 아이텔은 정작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나, 나는 그의 작품을 보면 에드워드 호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배경과 인물을 2017년으로 보각한듯이 느껴질 정도로. 전시된 그림 모두 2017년 작품이어서 더욱 ‘지금의 풍경’이라는 감각이 뚜렷했다.
‘건축학 학습(바라간)’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한참 구경하던 중 단체 관람객이 왔다. 그 틈을 타 갤러리를 빠져나와 북촌을 걸었다. 북촌에 가면 꼭 들르게 되는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관. 운이 좋다면 예술 서적으로 가득한 쾌적한 공간을 혼자서 독차지하는 사치를 부릴 수 있다. 몇 시간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마법 같은 곳이다.
간단히 끼니를 채우며 책을 읽으러 우드브릭 카페를 찾았다. 주말 오전의 크루아상과 커피는 언제나 옳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니시 가나코의 신작이 재밌어서 생각보다 카페에 오래 머물렀다. 단풍이 절정인 주말을 미술과 문학과 함께 보내니 좋았다.
몇 주 동안 이런 주말을 꿈꿨는데, 한동안 이날의 기억으로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