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7.
니시카와 미와의 <아주 긴 변명>은 올해 읽은 책 중 최고로 칠 정도로 재밌게 읽은 소설이다. 얼마 전까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와 <기사단장 죽이기>를 연달아 읽으며 ‘하루키 월드’의 환상적인 느낌에 사로잡혀 지냈다. 현실 감각이 뚜렷한 소설이 그립던 그때 마음 한편에서 계속해서 맴도는 작품이 <아주 긴 변명>이었다.
<아주 긴 변명>을 다시 읽다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고 싶어서 <어제의 신>과 <유레루>를 읽었다. 두 책 모두 그리 길지 않고 몰입도가 높은 책이라 눈 깜짝할 새 읽어버렸다. 그러는 동안 하루키 월드에서 길을 잃은 듯 헤매던 마음이 서서히 제 위치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니시카와 미와 소설들 <유레루> <아주 긴 변명> <어제의 신>
타이베이 여행을 다녀오고 몸살이 났다. 긴 연휴를 보내면서 그간 쌓아온 생활 리듬을 완전히 잃었다. 다시 일상의 리듬에 몸을 맡기려니 쉽지 않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나니 정신은 덜 힘들지만 몸은 여전히 무겁다. 내일 금요일, 다음날 토요일 그리고 그 다음날 일요일이 지나고 다시 한 주를 바쁘게 보내야 일상의 감각을 되찾을 것 같다. 어쩐지 휴가가 한낮 꿈같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닮은 것 같고, 거꾸로 일상은 현실감 짙은 니시카와 미와의 소설을 닮은 듯하다.
최근에 읽은 책은 무레 요코의 <카모메 식당>이다. 영화를 재밌게 봐서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주문했는데, 막상 받고 보니 특별 한정판으로 나온 손에 착- 감기는 예쁜 양장본이다. 종이 질감도 좋고 글자 크기도 적당해서 책장에 꽂아 두고 오래도록 바라 보고 싶은 책. 여행을 일주일 정도 남겨둔 때부터 시작해서 여행 직전까지 읽었다. 여행을 막 앞둔 때의 설렘과 함께 읽어서인지 더욱 감상에 젖었다.
무레 요코 소설 <카모메 식당>
책을 읽고 사치에의 아버지가 줄곧 했다는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 라는 말이 일상에서 자꾸 떠오른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 싫을 때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 몸살 기운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 퇴근 후 아무 신나는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갈 때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 라고 속으로 되낸다. 어쩐지 그 말을 하면 사치에의 다부진 얼굴이 떠오르며 작은 힘이 샘솟는다.
카모메 식당은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핀란드에 오게 된 세 중년의 일본 여자들이 ‘카모메 식당’에서 일하며 겪게 되는 일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소설이다. 핀란드에 오게 된 사연이라 해봐야 터무니없다. 자신이 가게를 낸다면 어느 나라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곳이거나(사치에), 세계지도를 펼쳐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찍어 떠나온 곳이거나(미도리), 환승할 때 짐을 잃어 체류하게 됐다거나(마사코), 이런 식이다.
이렇다 할 큰 사건이 일어나진 않지만 작은 일에도 진심을 다하는 그녀들의 마음 씀씀이를 보고 있자면 가슴 뭉클하다. 스스로 가진 신념을 꼿꼿이 지키거나, 타인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 한 줄, 말 한 줄이 너무나 따뜻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들처럼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든다. ‘인생 모든 것이 수행이다.’ 라는 말을 가슴 한편에 두고 자신만의 방식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저마다 가슴 속에 있는 ‘카모메 식당’은 절로 번성하지 않을까.
영화를 감명 깊게 봤다면, 영상에 담긴 헬싱키 풍경을 닮은 무레 요코의 문체로 그린 그녀들의 뒷 이야기를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