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1.
연남동에서 지난해 마지막 식사를 했다. 새해가 다가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단지 하루에서 다른 하루로 넘어가는 것뿐인데도 작은 것 하나하나에 마지막과 처음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지난해 마지막 해넘이를 보며 감상에 젖고 새해 첫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비는 것처럼.
연남동 생활을 다음 주에 정리한다. 지난해 마지막 식사를 곧 떠날 연남동에서 반가운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젠틀키친은 지하철을 오가는 길에 간간히 보며 기회가 되면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오픈 키친에 'ㄷ' 자 모양으로 손님이 둘러앉고 요리사 한 명이 음식을 내어주는 풍경이 좋았다. 주소는 서울 마포구 동교로38길 27
요리사가 한 명이고 좌석 수가 적은 만큼 대기는 필수다. 저녁 다섯 시 삼십 분쯤 대기 예약을 하고(전화 예약은 안 된다) 집에서 연락을 기다렸다. 우리 팀 앞에 두 팀이 있었는데 두 시간 가까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일곱 시 십오 분쯤 연락이 왔다.
메뉴는 식사와 함께 간단한 안주 거리가 있었다. 세 명이서 오일 베이스의 매콤한 할아부지파스타와 새우에 갓김치를 곁들인 갓새우, 부채살을 마늘과 로즈마르로 향긋하게 볶은 퍼플문 찹스테이크 그리고 클라우드 맥주 세 잔을 주문했다. 요리사가 재료를 손질하고 파스타 면을 삶고 뜨거운 불에 고기를 익히는 활기찬 모습에 어색한 사이끼리 오더라도 자연스레 대화하기 좋을 것 같았다. 나와 친구는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가격은 요리와 마실 것을 다해 1인당 2만원 정도다.
할아부지 파스타라는 메뉴 이름이 독특해서 요리사에게 물었더니 바질과 숙성된 고추짱아찌로 토속적인 맛을 더한 오일 파스타라 소개했다. 소스 향이 입에 착착 감기는 감칠맛이 있는 메뉴였다. 퍼플문 찹스테이크는 한 입 먹으니 맥주보다는 와인 글라스가 생각나는 부드러운 맛이었고 갓새우는 갓김치의 깔끔함과 새우의 식감이 잘 어우러져 맥주 안주로 좋았다.
요리사가 한 명이다 보니 메뉴는 시간 간격을 두고 하나씩 나왔다. 간단한 식사 후 가볍게 술 한잔까지, 모두 이곳에서 하기 좋더라. 아마도 이런 이유로 사람들도 금방 떠나지 않고 다른 요리와 술을 더 시키며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할 거다.
마지막 식사를 기분 좋게 마쳐서 다가오는 새해에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들기 전에 새해 하루하루가 지난 밤처럼 신나고 행복할 순 없겠지만, 되도록 그런 날이 많길 빌었다. 부디 작년보다 맛있는 걸 더 많이 먹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