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4.
집 앞에 '만화왕'이라는 만화책방이 생긴 지 오래다. 지나칠 때마다 호기심만 품고 있다가 스트리트H에 소개된 걸 보고 맥주를 마시며 만화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란 걸 알게 되었다. 장소를 코앞에 두고도 미디어를 통해 그곳을 알게 되어서 이상한 기분이었음. 만화에 별 관심이 없어서인지 아직도 공간과 서비스에 대한 호기심만 품고 가보지 못했다.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가 가로수길 배트에 코믹북더레드를 한시적으로 열었다. 배트 코믹북더레드에 함께 방문하기로 한 동료와 카톡을 주고받으면서도 도대체 그곳이 '정확히' 무얼 하는 곳인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집 앞에 있는 '만화왕'도 가지 않으면서 가로수길까지 찾아가게 하는 힘은 아마 이러한 호기심과 시즌이 지나면 경험하지 못할 '리미티드 공간'이라는 점이다.
젠틀몬스터 배트 코믹북레드 입구
젠틀몬스터 배트 코믹북레드 1층 프런트
젠틀몬스터 배트 코믹북레드 1층 라운지
젠틀몬스터 배트 코믹북레드 진열장
젠틀몬스터 배트 코믹북레드 라운지
젠틀몬스터 안경은 딱 한 번 샀는데,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던 6년 전 인터넷으로 샀었다.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이었다. 인터넷으로 착용하고 싶은 안경 여러개를 선택하면 모두 배송해주고 원하지 않는 건 반송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매력적이었다. 반송된 안경은 필요한 곳에 기부한다고 하니 더욱 호감이 갔다. 그랬던 젠틀몬스터가 이렇게 성장한 것. 확실히 초창기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 마켓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틈새를 공략하는 마케팅이 탄탄한 브랜드다.
젠틀몬스터 가로수길 플래그십스토어를 처음 찾은 건 지난봄. 친구가 안경을 사러 간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1층은 감상은 모호하지만, 확실히 인상적인 설치작품이 전시되었고 지하와 2층에 안경이 마치 작품처럼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다. 당시에 느끼기에 안경 팔 생각은 없는 매장 같았다. 사실 집 근처에 있는 안경가게에 들리면 점원이 친절히 젠틀몬스터의 안경을 소개해 주었고, 인터넷을 통해 편하게 살 수 있으니 말 그대로 그곳은 브랜드의 콘셉트를 전하는 플래그십스토였던 셈이다.
젠틀몬스터 배트 코믹북레드 2층 라운지
젠틀몬스터 배트 코믹북레드 2층 라운지
젠틀몬스터 배트 코믹북레드 2층 라운지
입장료를 내고 받은 키트와 음료
젠틀몬스터 배트에는 안경이 없다. 그런 점에서 전시공간으로 꾸며두었던 기존의 플래그십스토어와는 다른 행보다. 젠틀몬스터 배트 코믹북더레드는 시즌2이고 이전 시즌1 때는 옥수수밭 한가운데서 커피를 즐긴다는 콘셉트의 커피인더팜(Coffee in the farm)으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BAT는 기존 「젠틀몬스터」의 쇼룸보다는 대중적으로 풀어낸 곳으로 아이웨어 상품을 경험하는 매장이 아닌 대중과 접점을 이룰 수 있는 일상적 공간을 지향한다. … 시즌2의 테마는 '코믹북, 더 레드(Comic Book, The Red)'로 만화방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활용했다. 하지만 「젠틀몬스터」가 연출한 이곳에서 기존의 만화방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만화는 제 9의 예술이다'라는 프랑스의 격언에 따라 실험적인 만화방을 오픈한 것. 홍주하 브랜딩 매니저는 "만화는 대중성과 실험성을 넘나들며 깊이 있는 세계관을 전달하는 예술 장르"라며 "가볍게 인식되는 만화방을 재해석해 총체적인 경험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 패션비즈
키트에는 가이드북과 목화석 모양을 딴 비누가 들었다
키트에 든 가이드북을 펼치면 구비된 만화책이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만화책 상태는 최상, 하나하나 빨간색 커버로 포장되어 있다. 딱딱한 커버가 만화책을 읽기엔 다소 불편
만화책을 다 읽었으면 리턴 데스크에 반납하면 된다
호텔 프런트를 연상케하는 1층 카운터는 목화석이 늘어선 복도를 따라 있고, 하나하나 빨간색 커버로 포장된 만화책이 진열되었다. 만화책을 펼쳤더니 깨끗한 새 책이라서 놀랐음. 코믹북더레드에 입장료를 내면, 음료 한 잔과 만화책을 마음껏 볼 수 있고 입장권을 대신하는 키트에는 가이드북과 목화석 모양을 한 비누가 들어 있었다. 짐이 많다면 프런트에 맡길 수도 있다. 만화책은 지하 1층, 1층, 2층에 준비되었고 가이드북을 따라 원하는 책이 있는 층에서 만화책을 읽거나, 나처럼 원하는 자리를 잡고 공간을 즐기면 된다.
직접 경험하고도 공간에 대한 의문은 계속된다. 왜 빨간색이지? 왜 목화석을 두었지? 어느 매체의 뉴스에도 이런 설명은 없었다. 프런트 직원에게 물어보려다가 다소 차가운 태도에 그만두었다. 이런 의문을 디자인 마케팅의 논리로 이해하기보다는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느껴야 할 것 같았다. "우리 젠틀몬스터다! 우리는 달라! 안경은 라이프스타일이야!" 라는 자신감으로 충만하다고 느꼈고, 확실히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기왕 안경브랜드라면 원하는 안경 제품에 고객의 도수에 맞는 안경알을 클립형태로 경험해보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젠틀몬스터 배트 코믹북더레드 지하1층 라운지
젠틀몬스터 배트 코믹북더레드 지하1층 라운지
이곳을 나오면서 앤디 워홀이 말했다고 떠도는 격언이 떠올랐다.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사람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좋은 뜻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