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워스 [콜 더 미드와이프]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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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스트인가?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거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지난 2년간 남녀 임금 차별 문제, 직장 내 성폭력 문제, 육아 문제, 여성 혐오 문제 등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평등함을 기준으로 나는 여성의 편에 있다. 세상이 너무나 남성의 편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라니 너무 막연하다. 당장 성차별은 명절날 집안이 모임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나는 명절이면 고생을 자연스레 강요받는 큰어머니들의 처우에 화가 난다. 해가 갈수록 가족 모임은 안 좋은 추억으로 쌓인다.


그럼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좀 더 다양한 사회 문제 앞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 망설여진다. 현대 사회에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받는다는 주장에 어느정도 공감하게 된다거나, 여성 혐오에 대한 미러링으로서 남성 혐오가 가끔 불편할 때가 있다(기본적으론 미러링을 지지하지만). 여성 차별 문제에 대한 자각 없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대중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에 깊이 빠지기도 한다.


내가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고민을 하던 때 록산 게이가 쓴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읽었다. 사실 완독하진 않고 절반 정도 읽었는데, 무엇보다 나를 매료한 건 책의 서문인 '페미니즘: [복수명사]'였다. 페미니즘이 완벽하지 않고 결함이 있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이 사회를 중심을 갖고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는 그녀의 말은 페미니즘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평등을 추구하는 태도에 있음을 (조금은) 알게 했다. 생각하고, 말하고, 싸우며 세상을 더 좋게 바꿔 나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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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에 대해 적으려 했던 건 아니다. 단지 페미니스트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었는데 기회가 됐을 뿐이다.



지난주 외고를 마치고 의뢰자에게 책 세 권을 선물 받았다. 왠지 내가 고른 책이 아니라 선물 받아서인지(책 선물을 처음이라 할 만큼 오랜만에 받아본다) 별 흥미를 못 끈 채 며칠을 책장에 두었다. 그러다가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콜 더 미드와이프]를 펼쳤다. 영국에서 2002년 발행된 이 책은 1950년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조산사 제니가 겪고 느끼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담고 있으며, BBC에서 2012년 드라마로 만들어 지금까지 시즌을 거듭하며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는 이번 달 초에 발행되었다.


책을 쓴 제니퍼 워스는 1928년 영국 에섹스 출생으로 조산사 교육을 받고 간호사로 일했다고 하니 자전적 소설인 듯하다. 그래서 더 묘사가 담백하고도 생생했으리라. 책 표지에는 1950년대 영국 런던의 빈민가에서 일어난 감동과 충격의 '실화'라고 쓰여 있다. 논픽션를 바탕으로 한 픽션쯤 되겠다. 수녀원에서 일하는 조산사라는 주인공인지라 자연스럽게 50년대 영국 여성의 이야기가 여성의 시각으로 끝없이 펼쳐진다.


저자가 여성차별 문제를 극적으로 이야기 속에 끌어들이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하는 편이긴 하지만, 70여 년 전, 게다가 선진국인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의 여성의 처우를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움과 부당함을 느끼게 된다.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는 놀랍기도 했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출산한다는 것, 어머니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된 책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으로 책 전반에 훈훈한 감동이 지배적이다. 조산사라는 생소한 직업에다가 출산이라는 생소한 상황, 그리고 여성의 삶을 담은 소설이라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도 많았다. 소설을 구성하는 인물, 사건, 배경이 탄탄하게 어우러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힘이 새삼 소설의 재미를 알게 했다. 묘사가 담백한데도 그 모습이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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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밑줄 (모음)


‘아무리 대가족이 일반적이라고 해도 이건 말도 안 돼.’ 하루 일정표를 훑어보며 난 생각했다. 이건 무슨 착오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스물네 번째 아기라니! 첫 번째 숫자를 잘못 썼어. 줄리엔느 수녀님답지 않게 실수를 하다니. ’내 의심은 수술 노트를 보면서 굳어졌다. 겨우 마흔두 살이다. 불가능하다. 남들도 다 나처럼 실수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메리는 마음이 좀 놓였는지 말을 하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그녀를 위해 사과파이와 아이스크림을 더 주문했다. 이런저러한 메리의 상황이 천천히 드러났다. 나는 경쾌한 음악처럼 낭랑한 그녀의 목소리에 매혹되었다. 그녀가 오래된 연민을 자아내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밤새도록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나 비극적이다. 좋은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사실 어마어마하게 많다. 어떻게 이 상냥하고 예쁜 여자는 그런 사람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까? 어쩌다가 이렇게 궁핍한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혹시 모두 사랑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 없어서?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면, 나도 메리 같은 처지에 있지 않을까? 내 생각은 늘 그렇듯이 내가 사랑했던 남자를 향했다.


도리스가 아기와 함께한 오후 한나절은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깜박 잠이들고, 아기를 어르고, 뽀뽀하고, 아기와 엄마 사이에 깰 수 없는 유대감을 쌓았을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아기의 타고난 권리이다. 어쩌면 그녀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알고서 짧은 몇 시간 동안이라도 사랑을 듬뿍 주려고 애썼을 것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러시아 정교회에는 '성스로운 바보'라는 개념이 있다. 세상을 향해서는 바보이지만 신을 향해서는 현명한 사람을 의미한다. 내 짐작에는 테드는 아기를 본 순간부터 자기가 아빠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았을 테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아기를 안은 채 한참을 생각하며 앉았다. 그때 그는 자신과 아기의 미래를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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