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14.
학생 때 팝 아티스트 작가이자 독립큐레이터이신 최규 교수님의 강의를 쫓아 들었습니다. 펜실베니아대학교에서 미술석사, 뉴욕대학교에서 미술행정을 공부하신 교수님 강의를 통해 미술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기를 수 있었죠. 2012쯤? 교수님 작업을 돕던 중에 양혜규 작가를 주목하라고 한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전시했을 때였겠군요. 그때 인터넷으로 몇몇 작품을 훑어본 게 제가 아는 양혜규의 다였습니다. 국내에서 그녀의 작품을 만날 기회는 지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여린 SeMA 비엔날레의 한 점이 다였으니 더 자세히 알게 될 기회가 없었던 것 같군요.
사전에 구글링으로 양혜규 작가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작품을 보관할 공간이 없어서 이리저리 미술관을 옮겨 다니며 작품을 ‘보관’했다는 점, 그래서 작가도 어딘가에 머물지 못하고 유목생활 한다는 점 그리고 이리저리 떠도는 작품을 독일의 한 콜렉터가 구매해 미술 시장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다였습니다.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활동을 하는지, 그리고 그 작품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등 깊이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죠. 그래서 지난주부터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시작된 양혜규 개인전 ‘코끼리를 쏘다 像 코끼리를 생각하다’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전시 제목이 독특한데요, 조지 오웰의 소설 ‘코끼리를 쏘다’와 로맹 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에 영감을 받아 지었다는 제목에서는 약자에 대한 애착이 드러납니다. 두 소설에서 코끼리가 식민지배와 강제수용소에서 억압받는 인간을 상징하는데, 짓밟히는 인간과 문화에 대한 양혜규 작가의 고뇌가 반영된 것 같습니다.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창문 너머로 ‘솔르위 뒤집기’란 작품이 보였습니다. 미니멀리즘 작가 솔르윗의 작품을 23배 확장해 뒤집어엎어,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재료인 블라인드로 작업한 것입니다. 그녀가 미니멀리즘을 마치 조롱하는 것이 느꼈는데요, 실제로 그녀의 작품은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멉니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짚으로 작업한 ‘중간 유형’ 신작 시리즈는 왜 미니멀리즘 작품을 조롱하듯 거꾸로 매달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짚풀을 이용한 공예는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발견되지만, 그 특징은 저마다 다르죠. 그녀의 ‘중간 유형’은 짚풀을 이용해 고대 마야의 피라미드, 인도네이사의 불교 유적 보로부두르,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 라라 툴판과 토템신앙에서 모티브를 받아 만든 작품 6점으로 구성됩니다. ‘불필요한 것을 최소화 하자’는 미니멀리즘의 사조로 파괴되는 문화적 다양성을, 그녀는 이토록 집요하게 끄집어 내고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이 쏘는 문화의 다양성(코끼리)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 이번 전시의 메시지는 아닐까요? 다음 달에 리움에서 있을 양혜규 작가 강연에 참석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습니다.
이 시작 시리즈 외에도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성채’와 ‘상자에 가둔 발레’ 그리고 ‘서울 근성’을 둘러보며 그녀의 세계관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시각과 함께 냄새, 소리 등으로 관객에게 공감각을 일으키는 성채, 상자에 가둔 발레 등의 대표작은 고독함 자유와 집 인간관계 그리고 따듯한 집에 대한 갈망이 느껴졌습니다. 과거의 작품들이 작가로서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영향력을 내뿜는 것 같았습니다. 한층 더 성숙한 그녀의 작품에 벌써부터 앞으로의 작업이 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