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용 비범한 평범 출간기념 북토크 후기

2025년 12월 07일 리뷰/독서 댓글 7개

종종 ‘브랜드’라는 단어 앞에 지나치게 거창한 수식어를 부여한다.

세상을 전복시킬 혁신적인 미션, 인류를 구원할 숭고한 철학, 혹은 타인과는 완벽히 구별되는 ‘무언가’여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브랜드를 시작하려는 이들의 어깨는 늘 무겁기만 하다. 지난 12월 6일, 영등포 CGV에서 열린 매거진<B>  조수용  발행인의 신간 <비범한 평범> 출판기념 북토크는 그런 우리의 부풀려진 마음을 차분하게, 그러나 날카롭게 관통하는 시간이었다.

전 카카오 대표이자 제이오에이치(JOH)의 수장, 그리고 10년 넘게 한결같이 브랜드의 이야기를 다뤄온 매거진B의 발행인. 늘 세상에 ‘비범한(Extraordinary)’ 결과물을 내놓았던 그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힘주어 말한 단어는 ‘평범함(Ordinary)’이었다. 1시간 30분간 이어진 그의 담담한 고백 속에서,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업(業)의 본질을 다시금 마주했다.

비범한 평범 출간 기념 CGV 북토크에서 받은 작가 사인과 현장 사진

1. 철학은 ‘생존’의 다른 이름이다

"무조건 돈이 이겨요.
왜냐면 그게 사업의 본질이니까.
철학이 이기는 경우는 없어요."

우리가 열광하는 위대한 브랜드들, 예컨대 파타고니아나 프라이탁을 볼 때 우리는 흔히 그들의 ‘철학’을 먼저 동경한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옷을 사지 말라고 광고하는 배짱, 버려진 트럭 방수천을 가방으로 재탄생시킨 그 비범한 스토리텔링에 매료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수용 대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철학이 돈을 이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소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는 이 말은, 사실 가장 뜨거운 진실을 품고 있었다. 그들이 처음부터 지구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사명감으로 사업을 시작했을까? 아니다. 파타고니아는 그저 더 좋은 등산 장비를 팔고 싶었던 산악인이었고, 프라이탁은 비 오는 날에도 젖지 않는 튼튼한 가방이 필요했던 자전거족들이었을 뿐이다.

치열하게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니 남들과는 다른 기준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생존을 위한 ‘기준’을 타협하지 않고 끈질기게 지켜냈을 때, 시간이 흘러 남들이 그것을 ‘철학’이라 불러주게 된 것이다. 순서가 뒤바뀌면 안 된다는 그의 말은 묘한 위로가 된다. 지금 당장 나에게 거창한 철학이 없다고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니까. 모든 위대함은 지극히 현실적인 ‘생존’과 ‘장사’에서 시작된다.

 

2. 브랜딩, 결국 ‘주인의 태도’

"그걸 우리는 철학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리고 그거를 철학이라고 안 불러도 돼요.
그냥 '이 가게의 태도' 이렇게 불러도 돼요."

그렇다면 그 평범한 장사를 비범한 브랜드로 승화시키는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기술일까, 혹은 거대한 마케팅 자본일까. 그는 그것을 ‘태도(Attitude)’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흔히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져라”라고 강요하지만, 그것은 교육으로 주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진짜 주인의식은 오직 주인에게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이 손님에게 건네는 물 한 잔에 담긴 마음, 메뉴판의 서체 하나를 고를 때의 깐깐한 고집, 화장실에 놓을 비누 하나를 선택하는 취향. 이 모든 사소하고 평범한 결정들의 총합이 곧 브랜드의 결을 만든다.

향수 브랜드 ‘르 라보(Le Labo)’를 보자면 그들은 미리 만들어둔 향수를 팔지 않고, 주문받은 즉시 조향해 준다. 정확히는 만들어 둔 향수를 희석해준다. ‘신선함’을 주겠다는, 혹은 선물을 받는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겠다는 주인의 태도이자 고집이다. 결국 브랜딩이란 화려한 로고 플레이나 마케팅 기술이 아니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치를 끝까지 고집하는 뻔뻔함, 그리고 그것을 상대방이 느낄 때까지 밀고 나가는 성실함. 그 주인의 마음 그 자체인 것이다.

조수용 비범한 평범 표지

3. 브랜딩의 시작은 ‘안정감’

"안정감이라고 하는 거를 추구해야 되는 이유는
그것이 곧 브랜딩의 시작이기 때문에 그래요."

조수용 작가는 이번 대담을 통해 브랜딩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기발함이 아닌 '안정감'을 꼽았다. 대중은 흔히 브랜딩이라 하면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디자인이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떠올리지만, 작가는 오히려 작더라도 단단하고 신뢰를 주는 무게감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발뮤다나 아페쎄(A.P.C.)처럼 규모가 작거나 겉보기에 평범해 보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소비자를 안심시키는 프리미엄한 안정감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의식 있는 소수'를 지향하는 태도와도 연결되는데, 소비자는 본능적으로 화려한 겉치장 속에 숨겨진 진정성을 감지해낸다. 낯선 곳에 들어갔을 때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곳은 제대로 하는 곳이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 그 안정감이 곧 브랜드의 시작점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러한 안정감은 거창한 철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업을 대하는 주인의 성실함과 꾸준함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브랜드의 철학을 '지구 평화'와 같은 거대 담론으로 설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분식집을 운영하더라도 나만의 원칙을 가지고 매일 변함없는 태도로 임하는 것, 그 일관된 마음가짐이 쌓여 남과 다른 '나만의 스타일'이 되고 이것이 곧 외부에서 말하는 '철학'이 된다는 것이다.

 

4. 지극히 평범한 아이디어들

"결국 브랜드라는 건
정말로 지극히 평범한 아이디어들이더라고요.
그게 아주 대단한 게 아니더라고요."

사실 이 책의 원래 제목 후보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디어들>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브랜드들은 천재들의 영감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생각을 비범한 수준의 끈기로 밀고 나간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처음 집필할 때, 자녀들에게 아빠가 일하며 느낀 점을 남겨주고 싶은 유언 같은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솔직하고, 또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조수용 대표는 강연을 마치며 청중들에게 “그러니 쫄지 마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그 평범한 생각, 그 작은 가게, 그 사소한 프로젝트가 틀린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 평범함을 비범하게 만들 때까지 밀고 나가는 태도일 뿐이다. 무언가 대단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혹은 내 브랜드가 남들보다 너무 초라해 보인다면, 이 책 <비범한 평범>을 통해 생각의 군더더기를 덜어내 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일지 모른다.

 

해당 글은 현장 녹취한 파일을 바탕으로, Gemini 3 Pro의 도움을 받아 정리 및 재구성한 글입니다. 배포 목적이 아닌 개인 소장 목적으로 전체 녹취록이 필요하신 분은 메일 주소를 남겨 주시면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조수용 일의 감각 리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