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기술이 공존하는 제조 현장
독일 동부 괴를리츠(Görlitz)의 평범한 비즈니스 파크 한가운데에 자리한 버켄스탁(Birkenstock) 공장 내부는 실험실과 장인 작업장이 결합된 독특한 풍경을 보여줍니다. 투명한 파이프를 따라 퀴노아 알갱이처럼 보이는 코르크 입자가 흐르고, 오래된 기계에서는 접착제가 거미줄처럼 떨어지며, 다양한 색의 가죽은 마티스 조각처럼 잘라지고 늘어납니다. 이곳은 인간의 손과 로봇 팔이 함께 움직이는 정교한 생산 무대입니다. 수백 년 전 구두 장인이 쓸 법한 칼과 도구가 여전히 사용되는 한편, 레이저로 가죽을 절단하는 최신 로봇 기술도 도입돼 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신는 버켄스탁입니다.
수작업·반자동·완전자동이 공존하는 생산 체계
버켄스탁 최고제품책임자 마르쿠스 바움(Markus Baum)은 “어떤 공정은 전적으로 수작업으로, 어떤 공정은 반자동으로, 다른 일부는 완전자동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합니다. 회사는 특정 공정을 위해 파트너와 직접 기계를 공동 개발할 만큼 장인적 기준을 고수합니다. 혁신은 ‘필요할 때만’ 도입되며, 변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능적인 진전을 위해서만 적용됩니다. 공장은 창업 초기 프랑크푸르트 구두 장인의 전통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무엇은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감각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런 접근 방식은 버켄스탁의 철학인 ‘균형’을 구현합니다.
상징적 풋베드, 변하지 않는 브랜드의 중심
수작업이 남아 있음에도 버켄스탁의 생산량은 압도적입니다. 유럽산 가죽 두 개 축구장 분량이 하루에 잘리고, 브랜드의 핵심인 코르크 풋베드(Fussbett)는 여전히 모든 생산 과정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 풋베드는 스틸 몰드에서 빵처럼 구워져 나오며, 뜨겁고 말랑하고 특유의 향을 머금은 채 다음 공정으로 이동합니다. 디올(Dior), 릭 오웬스(Rick Owens), 질 샌더(Jil Sander) 등과 협업할 때도 풋베드는 절대 변경할 수 없는 절대적 요소로 남습니다. 이는 브랜드의 물리적 기반이자 철학적 상징으로, 현대적 웰니스 트렌드와 완벽하게 맞물립니다. 1774년부터 이어진 전통은 풋베드 생산이 지금도 전량 독일에서 이루어진다는 자부심으로 이어집니다.
백 년의 전통과 첨단 기술이 결합된 생산 방식
레이저 시스템은 가죽의 결점과 굴곡을 지도처럼 스캔하여 최적의 부위를 절단하는 데 활용됩니다. 그러나 1774 라인처럼 소규모로 만드는 실험적 제품은 여전히 전량 수작업으로 제작됩니다. 1960년대 미국 히피 문화가 버켄스탁을 자연주의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스티브 잡스(Steve Jobs), 디자이너 앙드레 워커(Andre Walker), 모델 케이트 모스(Kate Moss) 등 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신고 등장하며 글로벌 대중성을 확고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브랜드는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고 ‘사람이 자연스럽게 걷도록 돕는다’는 본질에 집중합니다. 700가지 이상 실루엣을 가진 방대한 아카이브는 유행의 순환 속에서도 방향성을 잃지 않는 브랜드의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협업과 혁신, 그리고 변하지 않는 미래성
버켄스탁은 협업을 “실험의 장”으로 정의하며, 브랜드 외부의 시각이 전통·품질·기능에 새로운 관점을 더해준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가죽 소재의 새로운 질감과 마감 기법을 연구하고, 물에서도 착용 가능한 신제품 라인을 확장하는 등 기능 중심의 혁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생산 라인의 마지막에 놓인 따끈한 아리조나(Arizona) 한 켤레는 여전히 몇 세기 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입니다. 변하지 않지만 시대를 관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버켄스탁의 ‘조용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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