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 컬렉션의 꿈, 내가 개리 파비안 밀러에 끌린 이유

2025년 08월 28일 오리지널/라이프

올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미술 작품 컬렉션을 고민하게 되었다. 삶 속에서 예술을 더 깊이 들이는 첫걸음인 만큼,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단순히 ‘예쁘다’거나 ‘소장 가치가 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보다 나의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는 웹 서핑을 하다 우연히 내 마음을 움직인 작품을 만났고, 갤러리에 문의하여 작품과 작가에 대한 스토리와 가격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래 글은 잉글비 갤러리 (Ingleby Gallery) 담당자가 알려준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그의 작품에 매료된 이유를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개리 파비안 밀러, The Sea Horizon, No. 1

그 작품은 개리 파비안 밀러(Garry Fabian Miller)의 ‘The Sea Horizon, No. 1’이다. 1976년, 당시 열아홉 살의 Miller가 영국 브리스톨 남서쪽 해안가 마을인 클리브던(Cleveden)에 위치한 자신의 부모님 집 옥상에서 바라본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찍었다. 그는 카메라 렌즈도, 노출도, 구도도 바꾸지 않은 채 같은 자리에서 오직 시간대와 날씨의 변화만을 기록했다. 사진의 주제는 단 하나, 수평선이었다. 그의 시선은 정적이었지만, 그 안에 머무는 풍경은 늘 변화했다. 이는 정지된 시공간이 아니라, 흐르는 감각이었다. 그는 상업 사진가였던 아버지의 암실에서 직접 손으로 10점의 사진을 인화했고 50년 간 창고에 잊혀진 채 보관되어 있다가 발견되어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다. 한 폭이 10cm 남짓한 이 작은 작품은 그 중에서도 그가 최초로 인화한 빈티지 사진이다.

Garry Fabian Miller Sections of England, The Sea Horizon, No. 1 1976-77, 1977 unique dye destruction print, hand-printed by the artist 10 x 10 cm (artwork) 4 x 4 in 35.9 x 35 cm (frame) 14 1/8 x 13 3/4 in

 

카메라 없이 구축한 이미지의 세계

작가는 당시 영국에서 등장하던 랜드 아트(Land Art) 운동 맥락 안에서 활동하며 몇 번의 전시를 열었지만, 이후 카메라 없이 이미지를 만드는 방향으로 작품을 전환했고, 이내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렌즈도 없고, 셔터도 없으며, 피사체도 명확하지 않다. 대신 그는 암실에서 직접 빛과 색소, 투명한 필터, 오브제들을 인화지 위에 배치해 노광시키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든다. 그는 “나는 빛이라는 언어로 생각하고, 암실에서 빛과 시간을 번역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수십 년간 그가 암실을 물리적 작업실이자 정신적 명상실처럼 사용하며 구축한 세계일 것이다. 20년 후, V&A 뮤지엄 큐레이터에 의해 작품들이 에디션으로 제작되어 그는 다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생명을 내어준 뒤 발견된 최초의 사진

하지만 작가는 초기 아날로그 방식의 작업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오랫동안 사용해 온 인화용지인 (Cibachrome)의 생산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작가는 얼마뒤 방광암 진단을 받았고, 이는 수십 년 동안 다루어온 암실 화학물질과의 접촉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가 초기 방식의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인화용지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 생명과 직결된 현실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50년 만에 발견된 The Sea Horizon, No.1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이 사진 안에는 작가의 젊은 날, 생명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담겨 있다. 아버지의 암실에서 직접 인화한 첫 번째 빈티지 프린트라는 점도 매우 특별하다. 

Garry Fabian Miller Sections of England, The Sea Horizon, No. 1


내가 이 작품에 끌린 이유

문득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책에서 읽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문학 작가가 좋은 글을 얻고자 한다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을 내주어야 하고, 생명이란 곧 시간이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이 말은 나에게 깊은 감동을 줬고, 이는 글쓰기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적용된다고 생각하여, 내가 일상에서 예술 창작 행위를 바라보는 기반이 되었다. 개리 파비안 밀러는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생명을 바쳐 창작 활동을 해왔고, 그가 더이상 창작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The Sea Horizon, No. 1에 그의 젊은 날의 생명이 순수하게 담겨 있다. 이것이 내가 이 작품에 끌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