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경쟁 프레이밍으로 보면 인생이 실패하는 이유

2025. 7. 28. 오리지널/라이프

어젯밤 아내와 북토크를 나누던 중, 깊은 인상을 남긴 말이 있었다. 아내가 읽고 있던 『미움받을 용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했다. 누군가 시비를 걸어올 때, 그것은 상대가 나를 이기고 누르려는 태도로 다가오는 것이니, 거기에 맞서 싸우려 들면 더 큰 충돌이 생긴다. 따라서 그 상황을 '경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감정을 배제한 채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잠들기 전부터 지금까지 하루 종일, 일하는 내내 곱씹으며 생각했다. 나는 전자상거래 1인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키워드 순위 같은 경쟁 지표에 너무 매몰되지 않으려 애써왔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드는 데 집중하며 지난 5년을 운영해왔기에, 아내의 말이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세상의 자극을 경쟁의 틀로 보지 않는다면, 감정 소모 없이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 '경쟁 프레이밍'으로 세상을 볼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내가 비대면 전자상거래업이라는 일의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감정 조절 가능한 환경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오히려 더 어려운 건, 일상이었다. 도로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이웃, 친구, 가족—그 누구도 나와 경쟁한다고 말하지 않는데, 왜 그 관계 속에서 경쟁심과 시기심, 피해의식, 특권의식이 생겨나는 걸까? 왜 그렇게 세상을 경쟁의 프레임으로 바라보게 되는 걸까?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한국의 강한 입시 중심 사회라는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험과 성적으로 줄 세워지고, 대학, 취업, 승진까지 끊임없이 경쟁의 사다리를 올라야 했다. 하지만 이걸 단순히 사회 구조 탓으로만 넘겨버리면, 나 스스로 변화할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리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경쟁'이라는 프레이밍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

 

'협력 프레이밍'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경쟁의 반대말은 협력이다. 그렇다면 가족, 친구, 이웃과도 협력할 수 있을까? 경쟁사와도 협력할 수 있을까? 이건 단지 이상적인 소리일까,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쟁 프레임은 세상을 제로섬 게임으로 본다. 누군가 더 가지면 나는 덜 가질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끊임없이 성장해왔다. 전 세계의 경제 파이는 줄어든 적 없이 커지고 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더 많이 가졌고, 어떤 사람은 적게 가졌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성장 속에서 '협력의 프레임'으로 움직인 사람들이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과거 아내와 함께 읽었던 『부자의 마지막 수업』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세상은 수직적인 권력 관계가 아니라, 돈을 매개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수평적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내가 희망하는 세상을 보는 관점

건강한 경쟁은 더 좋은 제품을, 더 나은 가격을 만들고, 소비자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한다. 그 결과 시장은 커지고, 경쟁사와 나 모두가 성장할 수 있다. 일이 이렇게 협력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경쟁 사회가 아니라 협력 사회에 살고 있다. 만약 주변 이웃이 땅을 샀다고 해서 배가 아프다면, 경쟁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협력의 프레임에서는 오히려 물어볼 일이다. 왜 그 땅을 샀는지, 어떤 정보가 있었는지, 어떻게 판단했는지. 그 안에 내 인상을 바꿀 지도 모를 인사이트가 있다.

배가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우문이라도 던지면 현답이 돌아올 수 있다. 경쟁이냐 협력이냐,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볼지는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