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스트 컴퍼니 엔비디아

2025. 1. 18.

서점에서 신간 서적을 둘러 보던 중 <더 라스트 컴퍼니>를 펼쳐 보았다. 작년 2024년 한 해 내가 투자했던 주식 종목인 에코프로비엠의 주가가 50% 하락하는 동안, 엔비디아는 200% 성장하며, 한때 미국 시가총액 1위를 기록했다. 내가 에코프로비엠에 투자하게 된 계기는 포모(FOMO) 였고, 일시적으로 100% 수익 지표를 보기도 했지만 결국 현재 50% 가까운 손해를 보고 있다. 포모 투자로 실패한 이 경험은, 현재 치솟은 엔비디아의 주가를 보는 나의 마음을 포모 이상으로 불편하게 한다. 마치 빚에 허덕이는 내가 의대에 진학한 엄마 친구 아들과 비교 당하는 심정에 가깝다. 이러한 마음으로 인해 <더 라스트 컴퍼니 엔비디아> 책을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펼쳐 들었지만, 곧 자세를 고쳐 잡고 읽기 시작했다. 단순히 투자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1인 기업가인 내가 배울 수 있는 지혜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작은 대기업: 엔비디아

나는 한국에서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이커머스 사업을 혼자서 운영하고 있다. 이런 내가 과연 전세계 시가총액 1위를 앞다투는 엔비디아에서 배울 게 있을까? 의심했다. 이러한 의심은 책의 서문에 실린, 젠슨 황이 2024년 스탠퍼드 대학교 MBA 학생 간담회에서 했던 말 한 마디로 풀려버렸다. "우리(엔비디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대기업입니다." 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1인 기업을 운영하는 나로써 "가장 작은 대기업"이라는 모순된 단어는, 마치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한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비밀의 문처럼 다가왔다. 가장 작은 대기업이라는 그의 말은 수치상으로 명확히 드러난다. 미국 시가총액 상위 5개 종목을 살펴 보면, 시가총액 대비 1인당 생산성은 엔비디아가 압도적으로 높다. 엔비디아는 어떻게 이렇게 (비교적) 적은 인원으로 기업의 가치를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표: 1인당 생산성, 현 시가총액 기준]

기업 시가총액$ 직원 수 시총/인원$
애플 3.46조 14만명 24백만
엔비디아 3.37조 3만명 112백만
마이크로소프트 3.19조 22만명 14백만
알파벳 2.41조 18만명 13백만
아마존 2.38조 153만명 1백만

 

엔비디아 조직 문화: 원 아키텍쳐

그에 대한 답은 '원 아키텍쳐'라 불리는 조직문화에 있다. 책에서 가장 적은 인원으로 최적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마치 단일한 칩을 탑재한 것처럼 조직 구성원 모두 동일한 이해도를 가지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 말한다. 이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두 가지 지표는 '동일한 이해도'와 '같은 방향'이고, 이는 모두 엔비디아 창업가이자 최고경영자 CEO인 젠슨 황의 경영 철학에 따르는 지표이다. 책에서는 젠슨 황의 경영 철학 아래 3만여 명의 직원이 동일한 이해도를 가지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낸 방법론도 일부 소개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방법론보다 엔비디아 경영 철학의 핵심이라고 느꼈던 SOL 방식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SOL 방식을 이해함으로써 나의 1인 기업 문화를 개선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1인 기업 경영 환경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엔비디아 경영 철학: SOL

SOL은 빛의 속도를 뜻하는 'Speed Of Light'의 약자이다. 엔비디아 조직 내부에서 이를 빛의 속도라 말하지 않고 SOL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 단어가 단순히 빛처럼 빠른 속도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빛의 속도처럼 변하지 않는 절대값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SOL 방법론은 다음 3가지를 따른다. 첫 번째,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최대치의 수준을 예상한다. 두 번째, 현 자원에 맞는 목표 수준과 시간 역추적해 절대값을 측정한다. 세 번째, 빛의 속도로 최대한 빠르게 실행한다. 이러한 방법론은 목표의 최대치를 달성하기까지 긴 시간을 투자하는 완벽주의의 방법론과 반대 편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SOL 결과물의 완성도는 완벽주의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주 빠른 시간에 결과물을 내 놓고 시장의 평가받은 뒤 개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젠슨 황의 경영 철학이라 할 수 있는 SOL 방식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높은 실패 역치'와 메타인지능력에 따른 '지적 정직함'이다. 엔비디아의 한 직원은 SOL 방식과 제품의 완성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의 제품이 완벽을 추구하거나 100퍼센트 완성된 상태로 더들썩하게 공개된다기보다는 불완전한 상태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진화하는 느낌이에요. 고객과도 매주 만나서 피드백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개선하는 사항들을 보여주며 함께 문제를 고쳐나가는 사고방식이 잡혀 있어요. 결국 투명하게 상황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과 피드백을 반영하는 속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엔비디아는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실험 정신으로 신제품을 개발하고, 신제품에 대한 정직한 평가를 바탕으로 개선해 나가며 AI 시장을 빠르게 장악할 수 있었다.

엔비디아는 프로젝트의 초기 성공 지표(EIOFS: Early Indicators Of Future Succeess)를 명확히 삼고 이에 부합하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포기하여 실패의 골든 타임을 둔다고 한다. 엔비디아의 초기 성공 지표는 간단하다. 바로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인가?'라는 물음이다. 이와 관련한 사례가 책에 소개되었다. 엔비디아는 모든 기술이 모바일화 되어가던 2015년, '내가 하지 않으도 되는 일'이라 판단한 모바일 시장을 과감히 포기했다. 누가 보아도 시장에서 뒤쳐져 실패한 프로젝트이다. 한편, 그당시 엔비디아는 본인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판단한 '클라우드 컴퓨팅 애플리케이션' 시장에 집중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 시장에서 자기 시장 잠식 원칙(carnivalization)을 통해 스스로의 제품을 뛰어넘는 혁신을 계속하며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엔비디아의 창업자 모드

책은 창업자가 떠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이른바 '기관화(institutionalization)' 과정을 거치며 '실리콘밸리 컴퍼니화'된다고 소개하며, 실리콘밸리에 퍼진 창업자 모드 방식에 대한 논란을 말한다. 이는 창업자가 업무의 세부 사항을 관리하며 권한 이임을 최소화 하면 독성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 위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이다. 한편, 저자는 Y콤비네이터 창업자 폴 그레이엄이 "상당수 스타트업들이 일정 규모로 성장한 이후에는 창업자가 모든 일에 세부적으로 관여하는 '창업자 모드'에서 벗어나,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중시하는 '관리자 모드'로 변화해야 한다는 업계의 기존 상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창업자 모드의 혁신성과 중요성에 대해 재조명한다. 창업자 모드 아래 엔비디아를 30년 넘게 3만 명이 넘는 조직으로 성장시킨 젠슨 황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1인 기업가로서 느낀 점

서두에 밝혔듯 나는 한국 시장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커머스 기업을 운영하는 자신이 전 세계 시가총액 세계 1위를 앞다투는 엔비디아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의심했다. 하지만 기업의 규모가 크든 작든 경영의 본질은 같다. 나는 1인 기업으로써 2024년 연매출 37억을 달성했다. 3만 명의 직원을 갖춘 엔비디아의 2024년 매출은 약 80조이고 이를 1인당 매출로 나누면 약 27억 원이다. 1인당 매출로만 생산성을 평가하자면 필자가 엔비디아보다 10억 원 더 높으니, 어쩌면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고 감히 배울 게 없을 거라 자조한 나의 생각이 어리석었을지 모른다. 필자의 사업은 어느 정도 매출 성장을 이룬 시점에 경기 침체 국면에서 조금씩 매출이 떨어지는 추세 있다. 책을 읽으며 나의 사업이 창업자 모드에서 관리자 모드로 서서히 전환하며 성장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성했다.

 

[표: 1인당 생산성, 2024년 매출 기준]

  매출 직원 수 매출/인원
엔비디아 80조원 3만명 27억원
필자 1인기업 37억원 1 37억원

 

또한, 나는 '1인 기업을 운영하는 데 조직 문화가 필요할까?'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혼자서 일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태해질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조직 문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엔비디아의 SOL 방법에 크게 공감하였고 이에 입각해 나만의 신제품 출시 방법론을 고도화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인가?'라는 엔비디아의 초기 성공 지표 EIOFS 물음 앞에서는, 경쟁사와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는 나는 작아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 먹고 "내가 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더 싸게 살 수 없다"라는 유통업에 맞는 초기 성공 지표로 신제품 출시를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엔비디아의 자기 시장 잠식 원칙 carnivalization 을 따라 스스로 더 나은 상품을 시장에 공급하기 위한 끊임 없는 노력도 다짐한다.